마음으로부터(from your heart)
명드보라 선교사
뷔퐁은 “문(文)은 사람이다”(Le style est l’homme meme)라는 유명한 말을 남겼습니다.
뷔퐁이 사용한 ‘문체’라는 의미의 양식(style)은 어휘 사용 초기엔 문학 이외의 영역에 적용했고 새기고 창작하는 여운을 가지고 있습니다. 괴테는 양식의 이러함을 좀더 우월한 위치에 놓고 manner(손을 의미하는 라틴어 manus에서 유래)로 해석합니다. 사람을 사람답게 하는 것은 창조주의 의도대로 예술적이고 정교하게 빚은 인간의 내면이 실은 창조 소산이기 때문에 하나님의 형상대로 빚어졌다는 의미는 다름아닌 인생은 개개인이 가진 무한한 잠재적 역량을 저급하거나 단순한 것에 고착시켜 사고하지 않고 자신을 유연하게 바라보고 자존감의 영역까지 자가 치료할 수 있는 역량을 부여 받은 것입니다.
저는 인생이 볼 수 있는 모든 영역은 개인의 차원에서 바라보면 그가 선택한 양식(환경이나 제한의 영향을 받지만)에 어느 만큼의 창조적 매너(하나님이 주신 인생의 질을 자신의 손으로 빚어가는 삶)를 발휘했는가가 그 사람의 내면이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시간과 경험은 우리에게 ‘문제’와 ‘질문’을 던집니다.
시간이 지나 결혼을 원하는 남자 독신들이 미래 배우자에 대해 이야기할 때 현실감이 다소 떨어지는 것을 봅니다. 쉽게 말하면 결혼은 차를 탈 때 마성(evil)도 같이 타기 때문에 유쾌한 이야기를 해야 싸울 일이 줄어드는 것과 같습니다. 그런데 문득 뒤돌아 보니 예수님이 없는 사람의 일상에 대해 별로 생각해 본 적이 없다는 것입니다. 대체 그분들은 무슨 생각을 하고 무슨 이야기를 하고 사는가? 입니다.
여행자의 관점과 거주자의 관점이 다르듯 사랑하는 사람들을 책임지려는 마음을 가진 사람과 자기 것을 찾는 사람의 관심이 다릅니다. 마태복음 18장에서 주님과 베드로의 대화 중에 천국은 그 종들과 결산하려하던 어떤 임금과 같다고 하시면서 만 달란트 빚을 탕감받은 종이 자기에게 백 데나리온 빚진 동료를 옥에 가둔 사건을 주인이 듣고 은혜를 받았던 종을 잡아 빚을 다 갚을 때까지 옥에 가두라고 합니다.
여러 번 이 본문에 의문을 가졌던 것 것은 옥에 갇히게 되면 가진 것이 없고 일도 할 수 없는데 어떻게 빚을 갚는가 입니다. 그러나 말씀을 읽을 때마다 그 깊은 뜻에 숨을 고르게 됩니다. 이 말씀은 불교문화와 힌두세계관 속에 사는 사람들에게 득도의 깨달음을 줄 진리입니다. 그들은 천국을 소망하면서 기약 없는 ‘탕감’에 이르도록 윤회라는 문(門)이 없는 옥에 갇혀 있기 때문입니다.
성경은 읽을수록 쉬워지는 게 아니라 깊어집니다.
물질을 소재로 한 내용이지만 탕감 받은 종의 관점이 아니라 탕감(물질이나 마음의 빚)을 통해 자유케 되어야 할 사람과의 관계의 질 입니다. 그리고 주님의 마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