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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교에세이


내가 나이기에 그래요
                                                                           명드보라

맹세(swear)와 약속 그리고 언약(covenant)

아무리 가까운 사람 사이라 해도 간격이 있다. 심지어 말이 필요 없는 마음을 읽을 수 있는 사이라도 그렇다. 그러므로 사람들은 현재의 상황과 느낌과 사랑을 미래까지 가져가기 위한 방편으로 맹세 혹은 약속을 한다. 다윗이 아들 압살롬에게 쫓겨 다닐 때 많은 사람이 나를 대적한다고 고백했는데 후에 다윗의 왕위는 큰 아들 압살롬도, 아도니야도 아닌 솔로몬에게로 돌아갔다. 그것은 다윗이 자신의 생명을 모든 환난에서 건져주신 주님의 살아계심으로 밧세바에게 맹세한 것 때문이었다.

하나님은 약속을 지키기 위해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신다. 어떤 것을 마음에 품고 새기고 절대 지워지지 않게 간직한 사람은 죽음 앞에서도 그 약속은 살아있다. 그렇다면 선교사로 소명을 받고 세계 각지에 흩어진 우리에게 무엇이 있는가    

우리들 가슴에 새겨져 아무리 지워내려고 해도 지울 수 없는 내 안에 살아서 숨쉬게 하고 나를 존재케 하는 것이 무엇인가?

새로운 헌신자들과 선교사님들이 현장으로 들어오신다. 소수라고 생각하고 싶지만 가정이 불완전하고 관계가 어그러지고 숨겨놓은 아픔들을 메고 선교사역을 하시는 분들도 있다. 우리가 이곳에 있는 것은 주님께서 열방을 사랑하시고 그들의 삶 터에서 주께로 돌아올 수 있도록 우리의 마음을 움직여 보내신 것이다. 이 부분이 가슴에 새겨져서 다른 것을 넣을 수 없게 된 것이 선교이고 선교로의 부르심이다. 이 부르심에 대한 하나님과의 개인적 약속이 먼저라서 사랑하던 사람과 결혼하지 못한 인간적인 상처도 있는 것이고, 이 거룩한 한 편의 부르심 때문에 함께 사시는 분들의 다른 편 삶에 그늘이 있는 것이고, 이 부르심이 소중해서 아이들이 학교에서 언어문제로 2,3학년씩 낮추어 공부하며 때로 열등생취급을 당해 아프지만 평강 안에서 참아 내는 분들.

많은 아들이 있던 다윗이 자신이 사랑하는 여자에게서 낳은 솔로몬에게 왕권을 물려주려고 맹세를 했다. 남편 있던 여자를 취해서 하나님께 징계를 당하면서도 빼앗아온 여인의 후손으로 예수께서 오셨다. 거슬러 올라가 보면 다윗의 조상인 유다는 자부 다말과의 관계에서 베레스를, 그 후손은 이방 기생 라합과의 맹세(수2:20)에서, 아브라함의 조카 롯의 아내가 소금기둥이 되어 죽자 큰딸과의 사이에서 나온 모압의 후손인 과부 룻과 보아스의 관계에서, 거룩하신 하나님이 거룩함이 없는 혈통을 통해 사람으로 오신 역사이다.  우리에게 무엇을 말씀하고 계신가
  
사람이기 때문에 사는 동안 상처가 없을 수 없다. 죄성으로 인해 완전할 수도 없다. 그러나 주님도 다 아시는 환경과 조건에서 생긴 상처와 고난들. 내 아내가 너무 세속적인 것을. 어느 분에게는 아내가 자신보다 더 성령에 의지하며 살아간다는 것을. 결혼하고 싶은 독신을 혼자이게 하는 긴 시간들의 지루한 기다림도 사람 사는 것은 모양은 다르겠지만 어제도 존재했던 일들이 오늘도 여전하고 내일도 있을 것이다. 그래서 야고보 기자는 서로 사랑하라고 외친 것이다. 나이와 시간과 비례하지 못하는 성결과 거룩이 여전히 존재하지만 주어진 내 삶에서 기뻐하고 감싸고 사랑하다가 앓고 넘어지지만 주님과 동거하며 배우며 똑 같은 문제와 고통 속에 있는 사람들 속으로 들어가라고 말씀하시는 것 같다.  

19개월 전 어느 목요일 저녁식사를 하고 헤어진 현지인 동역자를 일 년 반이 지난 식탁에서 오랜만에 만났다. 그간의 물리적 거리감이 얼굴을 보는 순간 없어졌다. 말은 더 차분해졌고 열정은 더욱 뜨거워진 사람. “그가 출옥을 하면 꼭 물어보리라!” 다짐했던 질문 하나를 가슴에 담고 식사를 했다. 제한과 통제라는 단어만 있는 감옥에서 그는 성령에 의지하는 사람이 되어서 그 안에서 자유하고 편안해졌고 깊어졌다. 숨을 조이는 순간들과 종교지도자들과의 피 말리는 대면에서 성령이 말씀을 주셨으며 두려움을 사라지게 하셨다고 고백했다. 그는 순종했기에 감옥에 갔고 법정과 200명이 넘는 지도자들 앞에서 다시는 예수를 전하지 않겠다는 약속을 하면 그 자리에서 출옥이 가능하다는 그들의 말을 접고 그 분을 전했을 때 하나님의 방법이 사람의 법을 눌렀다. 그들은 말씀이신 예수를 몰랐던 것이다

사람들이 미워하는 것은 예수라기보다 그 분의 이름이 담긴 교회와 선교와 우리들이다. 주가 흘리신 언약의 피가 의미나 상징화 되어버려 우리 삶이 예수의 살과 피가 되지 못해서인지. 예수가 되지 못하고 내가 예수 전하는 사람이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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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9.02
12:17:23 (*.58.203.2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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