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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교에세이

Mimesis


                                                                               명드보라 선교사

기원전 4세기 아테네에 아리스토파네스 (Aristophanes)라는 유명한 시인이 있었다.  
애석하게도 Attica의 무대 위에서는 희극적 언어로 클레온(Cleon)을 이길 수 있었지만 현실에서는 그 반대였다.

사람들은 간혹 문명과 문화를 혼동한다. 대중이 선호하는 대상이나 문화적 요소를 우위로 자리매김 하는 것은 기원전부터 시작하여 결코 시대와 역사 속에서 도태될 수 없는 것처럼 여기는 것이나 인류가 새로운 것을 좋아하는 것은 다분히 발명이나 문명의 진보를 개인의 것으로 누리고 싶어하기 때문일것이다. 누리기 위한 창조조차 모방에서 시작된다지만, 미메시스(Mimesis모방)라는 말은 웬지 희극무대를 연상시킨다. 대중이 한 개인을 인물로 만날 수 있는 자리가 ‘거리의 연설’이었던 고대 아테네의 광장과 바울의 ‘아테네 설교’가, 다소 시간적 거리가 있지만 커피 한 잔을 들고 창가에 앉아본다. (막이 올라가 있는 동안만 시인의 말에 박수를 치는 관객이라!)

많은 인물을 만나게 했던 거리의 무대에서 당대의 인물이었던 바울은 여타의 사람들과 다른 진리에 대해 외쳤었다. 거기에는 한 시인이 사람의 생명을 우습게 아는 정치가 클레온을 타파하려는 냉소적 언어나 자변의 시어가 아닌 너무나 잘난 한 남자가 자신은 아무것도 아니되 진리와 생명의 주인과 가치에 대해 외친 아테네의 광장이여!

지금은 모양은 좀 바뀌었지만 소수가 엔터테인먼트라는 이름으로 많은 영화와 드라마와 대중음악을 만들어내고 있다. 거기엔 대중이 외면하는 것은 상품가치가 떨어지므로, 충분히 선동해야 하고 설득할 수 있는 무대와 언어와 배경과 배우가 대중이라는 관객을 향해 상품을 팔고 있는 것이다. 그 여파로 무대의 세트대로 집을 세팅하고 무대 위의 배우가 던진 말과 그들의 의상과 화장에 열광하며 그것을 모방하는 그야말로 미메시스의 주가가 극에 달한 시대에 성과 속이 모방의 동류로 살아가고 있다. 심지어는 신전의 외벽기둥을 실내에 들여 인테리어를 하면서 부와 명예를 상징하는 것처럼 포장하는 기술은 아테네의 무너진 신전기둥의 신비와 웅장함을 상징적으로 모방한 이미지 메이킹(Image Making)임을 알면서도 그것을 대통령의 궁인 양 착각하는 것을 즐기는 것이다.

날이 어두워가는 거리를 바라본다. 창이 흐려지나 해서 자꾸 커피 잔을 들고 창문을 옷소매로 닦아본다. 이젠 차가워진 커피잔을 내려놓으면서 바울이 별 복음의 성과가 없었던 아테네의 광장 설교를 왜 했을까 생각해본다. 아테네의 설교 역시 지식인이 동경하는 ‘미메시스’의 연장이라고 해석해 볼 수 있지 않을까.
오, 아테네 시인의 광장의 매력이라니!
귀족과 평민의 소통의 광장이기도 했으리라.

귀족과 평민 사이가 하늘과 땅처럼 멀었던 17세기 러시아에 전략적 계급이 생겨났다. 그것은 수도를 모스크바에서 자신의 이름을 붙여 만든 신도시 상트 페테르부르크로 이전한  표트르 대제( Pyotr Alekseevich Romanov) 즉 서방세계에서 피터대제(Peter I the  Great)라 불리웠던 그가 인텔리겐차((intelligentzia)라는 지식인이자 정치적인 소통의 역할을 감당할 장교계급을 중산층으로 만들었다. 그래서 ‘인텔리겐차’ 라는 말의 어원이 러시아어이다. 출발은 러시아가 당시 서유럽사회 중심의 스웨덴에 정복되는 것을 막기 위한 커뮤니케이션 계급으로 시작하였으나 하층민의 시각엔 선망의 대상이자 외적 발전을 거듭한 계층이기도 했다. 즉 그들의 내적 계급갈등과 관계없이 이들은 두 개 이상의 문화와 문명의 중간자였다.

지금 선교사와 디아스포라 사업가들이 이들의 자리에 서있지만 극명하게 다른 점은 선교사들에겐 중산 지식인 계급장도 없고 정부도 침묵하는 영적 군사들이다. 선교사들은 파송 전 상류사회부터 하류까지 모두 포함된 자신의 사회 신분에서 무 계급으로 자처하여 교차문화 속에서 살고 있지만 내적 혁명이 필요했던 과거의 인텔리겐차의 미메시스(Mimesis)가 되어가고 있는 것은 웬일일까.

외적으로는 조금만 특별하게 살아도 정죄하고, 지금까지 역사가 실패라고 말했던 것을 반복하거나 모방하지 않는 선교나 선교사들은 정죄의 대상에 동류로 취급된다. 진리를 위해 전방에 선 자들이 미메시스의 달인들에게 무대 위에서도 무대 아래서도 밀리고 있다. 선교문화가 선교문명을 일구기를 멈추고 후진기어를 놓고 가는 것에 교회가 공감의 박수를 치고 선교재정을 더 후원하고, 새로운 전선을 닦는 자들은 편견과 영적 총을 맞고 쓰러져도 '부상 중' 푯말만 걸어놓고 그야말로 상처를 입어 앞으로도 뒤로도 가지 못한다. 간혹 아티카의 무대가 허락되어 선교보고를 하는 이십여 분 동안 아리스토파네스가 되기도 한다.

교회여, 성도여 눈을 떠라. 무조건 박수를 치는 잠에서 깨어나라. 그대들은 성 엔터테인먼트 회사를 차려놓고 재방송까지 즐기면서 새로운 선교역사를 찍는 일에는 투자하지 않는 회사가 되어가기에 사회조차 손가락질을 하고 싶어 하는 것이다. 무대 위에서는 시인의 시를 읽고, 교차 문화를 공연의 관객으로 돈을 지불하며 대위임령의 공허감을 채우려 하지만, 그대가 관객으로 박수를 치고 있는 한 그것은 현실이 아니라 무대일 뿐이다. 무대의 막이 내리면 그대 영혼은 다시 공허함으로 들어가게 되지만, 진리의 무대와 영적 장교들은 지금 막이 내려지지 않는 전방에서 가보지 않은 길을 내보려 내부자의 문화 속으로 진리의 길을 내고 있다. 이제 미메시스(Mimesis)만을 위한 모방선교에 박수 치는 것을 멈추어 보자.

지금껏 본 적이 없는 것을 사시오. 천하를 호령하고 신 문명을 일구었던 표트르대제는 자신의 이름을 붙인 상트 페테르부르크 광장에 동상으로만 남아있지만 영원히 살아계신 예수의 피 값으로 만들어가는 성령의 광장을 통째로 사시오. 여러분의 삶에 채워 절대 막을 내릴 수 없도록 온 마음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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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6.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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