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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교에세이

패러다임(Paradigm)

                                                                        
                                                                           명드보라


오직 한 번뿐인 인생에 끝까지 남는 것이 무엇일까? 재물도 자녀도 사역도 아니다. 이 셋은 한마디로 잘 키우고 양육해서 나란 주체로부터 독립시켜야 할 것들이다. 그렇다면 무엇인가? 한동안 밤을 새우며 고심을 했다. 옆에서 하나 둘 쓰러지는 선교사님들과 어느 날 집에 와 보면 세상을 떠난 지인들. 그 분들을 충분히 사랑하지 못한 내 안의 빈자리.  

대체 나의 무엇이 선교사가 되어서도 복음의 핵심을 흉내만 내는 자로 머물게 했던 것인가? 눈물이 나왔다. 너무 많은 사람들의 얼굴이 스쳐갔다. 한동안 또 누군가를 생각하다가는 벌떡 일어나서 "내가 널 사랑하면 이제 나는 다 죽은 거다!" 라는 생각을 한 때가 있음을 고백한다. 후방에서 사역을 막고, 그 이유에 자신의 절대 당위성을 주장하는 모습에 덤덤하게 손을 흔들었다. 그러고 보니 그분들이 세상방법에 지혜로웠기에 우리가 바보로 보인 것이다. 이 바보들의 행진 중 한 일화를 적어본다.


우리의 동역자 N형제는 지난해 읍장(Kepala Desa) 선거에 출사표를 던졌다. 마을사람들이 가진 것을 모아 자기를 지원하니 출마해야 할 것 같다고 해서 여러 사람이 축복기도를 했다. 그러나 주정부에 선거인 등록을 하는데 거금이 필요했다. 우리도 통장에 남은 잔고를 다 털어주었지만 턱없이 모자랐다.  

마을사람들은 계속되는 부패와 가난을 물리치려는 일념으로 "이 사람이 꼭 읍장이 되어야 하니까 등록일을 연기해 달라"고 매달렸고 군수(Bupati)는 마을 사람들이 돈을 모아서 뽑아 달라는 선거는 살다가 처음 본다면서 등록마감일을 연기해주었다. 그런데 선거자금은 턱없이 부족했다.

팀원들은 기꺼이 금식기도에 들어갔다. 기도 시작할 때 마음이 아팠다. 순간 생각하기를
지원결정이 나면 후원금을 지원해야 하는데 그 거금이 우리통장에 없고, 지원결정이
나지 않으면 또 누군가 부패한 지도자가 나와 마을사람들을 힘들게 하고 형제의 입지도
어려워질 것이기 때문이다. 금식을 마친 주일 저녁이 되어 팀원들 7명 중 6명이 모여
선거금 지원을 하는 것이 좋겠다고 지원결정을 하고는 모두 자기 주머니를 열었다.
거금의 모금액수가 다 채워졌다.

"할렐루야!"


그 중엔 당장 아이들 학비도 없는데 사역도 아니고, 현지인 형제의 마을 읍장 선거에 돈 대는 일을 돕겠다고 나서는 선교사들의 너털웃음 속에서 성령님도 웃고 계실 텐데, 밖은 뜨거운 대지에 비 한 방울 없다. 바람이 부는 시원한 곳을 따라가다 보니 우리 집 옥상. 기막힌 광경이 벌어지고 있었다. 오렌지 물감이 황금색 공중에서 불꽃놀이 하듯 줄줄 흘러내리고 있었다. 이런 별천지 노을이 바로 내 머리 위에 있었다니!


그렇다. N 형제의 마을 사람들과 동질적인 문화화(Enculturation)가 되는 평온을 소유한 분들은 이 황금노을보다 더 익어 보였다. 아! 지금 이 기분은 에스겔 선지자가 성전을 측량할 때 그곳에서 물이 흘러나와 몸을 모두 적셔오는 전율이다.  




이 놀라운 황금빛 저녁, 토마스 쿤(Thomas Kuhn)이 남긴 말이 가슴을 스친다. 과학자는 사실에 근거해서 사물을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이미 자기가 지닌 패러다임(paradigm)을 통하여 사물을 보고 분석한다는. 필자는 과학자에게 주는 그 말을 우리들의 것으로 고쳐본다. "하나님 중심의 세계관(Godcentric worldview)으로 안팎이 물든 사람은, 자기는 부인하고 오직 ‘예수 생명’의 패러다임을 통하여 사물을 보고 품는다" 라고.

(패러다임은 방향과 의미를 부여하는 요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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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5.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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