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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뎀나무아래]마음의 기쁨

마음의 기쁨

                                                    명드보라 선교사

마음에 기쁨이 그치면 마음이 피곤해진다고 예레미야 선지자가 그의 애가에서 노래합니다. 마음이 피곤해진다는 것은 hearts are faint 즉 약해지는 것입니다. 더불어 눈들이 어두워진다고 했습니다. 예레미야 애가 5장은 하나님의 긍휼을 바라는 기도인데 chant 형식의 노래입니다.

오랜 기다림도 마음의 기쁨을 상실합니다.
오랜 침체는 눈을 어둡게 합니다. 볼 것을 볼 수 없으며 모든 게 분명하지 않아 어디로 가야할 지 방향을 정할 수 없게 됩니다. 사역을 쉬고 있거나 사람을 기다리다 자신의 삶의 방향을 정할 수 없을 때 앞을 내다보고자 하나 볼 수 없는 게 이와 같습니다. 눈이 어두워진 자신의 백성들을 향해 죄악이 원인이라 말한 예레미야를 생각해 봅니다.

그럼에도 일부는 희망이 전혀 없는 상황에서 일어서며 인생의 장애를 넘어갑니다.
그러나 원만한 조건에서 극단의 선택을 하는 사람들은 마음에 기쁨이 없거나 방향상실 때문에 어리석은 선택을 하는 것입니다. 삶의 방향을 갖는 다는 것은 현재의 열악한 상태나 환경을 넘어서게 하지요.

사랑에 빠진 사람에게 무엇이 사랑이냐고 묻는 것은 대답하기 어렵습니다. 그는 비트겐슈타인과 러셀, 하이덱거처럼 정의나 개념을 파악한 것이 아니라 그의 몸과 영혼이 사랑에 빠져 모든 세계가 다르게 보이는 것입니다. 사랑의 본질essence은 모를지라도 그 실제reality 속에 있는 것입니다.  

도무지 주체할 수 없는 상실감에서 나오지 못할 때도 인생은 무언가를 기다립니다. 우리는 하나님 그 분 때문에 삶의 방향을 정한다고 하지만 많은 경우에 그 결정 가운데 나와 누군가가 있습니다. 그러기에 원하던 사람과 관계가 깨어지면 혼란과 방황을 겪게 되는 이유입니다. 방향성의 상실이죠.

수학이나 물리학에서 한 방향을 가지는 것은 무한대의 영역이라 합니다. 흔히 방향성을 가지는 것은 수많은 것 중 제한으로 생각하기 쉬우나 오히려 헤아릴 수 없는 차원의 벡터Vector 공간을 열어주게 됩니다.

마리아의 남편 요셉이 ‘의로운 사람이라’ 약혼자의 동거 전 잉태함을 알고 그를 드러내지 않고(did not want to expose her to public disgrace) 가만히 끊고자한 장면을 묵상 중 다시 읽게 되었습니다. 일반적으로 의로운 사람은 불의한 사실을 드러내고 사람들을 선동하는 사람이어야 할 것 같지만 요셉은 여인이 공적인 수치를 당하지 않도록 조용히 관계를 정리하려고 했던 것을 보게 됩니다. 이 일 후에 요셉에게 주의 천사가 현몽하여 성령으로 잉태됨과 마리아를 데려오는 일을 무서워하지 말 것을 알려주자 그대로 따릅니다.
우리가 여러 모양의 사역을 하며 다른 사람의 사역을 알게 모르게 폄하하는 일이 하나님의 마음에 합당한지 생각해봅니다. 요셉은 하나님을 위해 사역한 기록이 없지만 하나님께서 그를 의인이라 부르셨습니다. 노아는 600년을 살면서 자식을 낳고 농사를 짓는 일 외에 방주사건 이전의 특별한 사역은 기록에 없지만 그를 당대의 의인이라 부르셨습니다. 하나님을 아는 것과 하나님께 순종하는 것은 다릅니다. 비트겐슈타인이 패러다임 이슈를 세상에 들고 나온 과학자 토마스 쿤에게 어느 부분 영향을 주었지만 자신이 그렇게 살았는가는 다른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지금까지 살아온 것과 다른 것을 말씀하실 때 전환에 대한 두려움이 있습니다. 전혀 앞을 알 수 없는 길에 서서 주님의 마음을 묵상해 봅니다!

 

*선교타임즈 2013년 8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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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8.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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