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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가 되어 내릴 수 있다면

                                                                                                    명드보라

오늘은 비가 온다. 어제는 화산재가 심하게 불어왔지만. 여기서는 화산재가 내리는 것을 “화산재비(Hujan Abu)”라고 한다. 내리는 비를 바라보며 따뜻한 커피를 마신다. 날이 밝아오는 새벽 길은 단테(Dante) 자신이 “신곡  La Divina Commedia”에 기록했듯 첫사랑의 여인 베아트리체가 천국의 길 앞에서 단테를 기다리고 있는 환영이 보이듯 물안개가 자욱하다.

영원히 함께 하고픈 사랑을 많은 사람들이 노래한다. 영원의 문에서 기다리는 사랑하는 여인과 천국을 여행하는 남자의 그림이 떠오른다. 거기엔 제한이나 종결이 없다. 우리는 세속의 사랑과 가사에 너무 익숙해져서 영원한 것에 대한 미적 고유함이나 순결성에 대한 심미안과 기도를 잃고 속된 것에 앓고 있는 지 모른다. 지금보다 더 사랑하겠다는 말이나 앞으로 함께 하겠다는 그리스도인의 언약 속에는 죽음까지가 아니라 죽음도 넘어서 너와 영원히 있겠다는 ‘단테’적 열망을 말하지만 사랑하는 이의 구원을 이루기 위해 수고하기 보다는 아파하는 ‘감상’이란 플랫폼에 너무 오래 앉아있는지 모른다.  

역사가들 중에 ‘파우스트’는 괴테(Johann Wolfgang von Goethe)가 욥기의 서문에서 영감을 얻어 쓴 것이라 말하는 사람도 있다. 악마의 화신으로 타락해 지옥에 간 파우스트를 그레테헨이 화비(fire rain)가 되어 구해낸다. 단테는 신곡에서 가장 사랑하는 여인과 함께 영원한 안식을 꿈꾸었다면, 괴테는 파우스트를 통해 지옥의 불구덩이에 들어와도 자신을 건져낼 수 있는 화비가 된 사랑하는 사람의 손에 건져지는 것이다.

솔로몬은 술람미 여인에게 ‘사랑은 죽음같이 강하다’고 했다. 어쩌면 그것은 오늘 내리는 비처럼 조용하게 적시지만 이미 죽음이란 경계가 무색할지 모른다. 적도 아래 내리는 비는 이런 이야기를 모르는 많은 이들을 적시고 있다. 아마 그 많은 무슬림들 중에 불비가 되어 자신을 구해줄 여인을 기다리는 사람들이 있기에, 예수 없이 내세를 소망하며 무모히 죽음을 넘으려는 것이다. 얼마 전에 발리 테러범들이 사형집행을 받았다. 텔레비전에 비친 자랑스런 표정의 자만 가득한 그들이 지금은 그레테헨 없는 파우스트의 형벌 속에 있을 것이다.

이 비는 예수가 없는 이 사람들을 향한 주님의 소리 없는 눈물이다. 이분들에게 아직 생명의 비가 되어 내리지 못한 우리들의 작은 가슴이 젖어 드는 소리다. 그것은 신화 속의 제우스가 감금된 다나에를 만나기 위해 금비가 되어 그녀에게 스며들어 사랑을 나눈 이야기처럼 신화적 노스텔지어가 아니다.

사랑은 아무리 멀어도, 상자에 담겨 바다에 버려져도, 청동으로 만든 곳에 감금되어 있어도, 지옥 끝이라도 불비가 되어 찾아가는 것이다. 비를 맞으며 생각해본다. 참 가까이 왔다. 오기는 왔다. 그리고 시간은 길을 만들었다. 아직 거기에 시원하게 터져 흐르는 물이 된 내가 없다. 나는 아직도 주께서 바라시는 비가 되지도 않았고, 물이 되지도 못했다. ‘나’라는 견고한 패러다임의 형질을 다 녹여내 흘러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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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12.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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