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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교에세이

여성의 시각으로 보는 신 자유주의 임계점

                                                                          명드보라

우리는 삶의 전반적인 부분에 새로운 패러다임을 요구하는 어느 정점을 지나고 있다. 그러나 아무도 앞으로 다가올 것이 무엇이라고 서둘러 말하려 들지 않는다. 심지어 미래학자인 앨빈 토플러도 불확실성의 시대와 테레분자들이 도처에서 일어날 것을 얼마 전에 내다보았고 그 일은 현실로 진행 중이다. 지금은 급격히 세계집단의 삶의 양상이 바뀌는 듯 보인다. 그러나 변함없는 것은 재외국민으로 살아가는 분들의 대부분은 이국 땅에서 사업을 하고 가정을 일구며 산다. 물론 어떤 집단이나 개인은 다른 미션을 가지고 나오게 되지만 단순히 자신의 한계와 인생을 도전해 보기 위해 삶의 변화를 원하는 것이 목적인 사람들은 많지 않은 것 같다. 드래커는 “사업의 목적은 고객을 창출하는 것”이라고 했다. 내가 들고 온 어떤 물건이나 아이템을 적용해서 수익을 내려고 사업하기 보다 물건을 팔기 위해서는 쓰는 사람의 입장에서 돈을 기꺼이 지불하도록 고객의 생각을 알아내는 창조적 마케팅을 가진 사람과 기업이 살아남는 세상이 되어 가고 있다.  

사업보다 정치에 관심 있는 젊은이들은 NGO에 소속되거나 이와 비슷한 비정부기구 모임들을 만들어 내어 시민정치를 이끌어가고 있다. 세계화가 되어갈수록 사람들은 소그룹의 공동체로의 소속감에 더욱 힘을 쏟고 자신이 속한 집단의 힘을 키우기 위해 뭉치고 외부세력들에 압력을 가하기도 한다. 세계화라면 Uni-culture가 확산될 것이라 생각했던 사람들도 더욱 국지적인 것과 고유함을 유지하려는 노력들에 치중하고 그것을 상품화해서 세계화로 이끌어 내려고 각 나라별로 노력하는 모습을 미디어를 통해 쉽게 접하게 된다.  

교황이 황제를 축출하던 시대가 있었다. 교황은 세금을 내지 않아도 되는 많은 영지를 소유했기 때문에 그는 상호가 없는 재벌이었다. 한 범 위임하면 종신직이라 황제의 자리보다 더 안전한 곳이었다. 한국교회는 몇몇 개 교회가 종단을 움직일 힘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간혹 영지를 넓힐 생각을 하는 대형교회 목회자들이 교회정치를 하는 것이 문제가 되어왔다. 선거자금도 교인들의 헌금에서 나가기도 했다. 종교단체들도 세력화되어가고 있어 영적 정신적 치료는 의과대학을 나온 의대생들의 영역이 되어가고, 고속망을 통해 커뮤니케이션을 하는 인터넷 공간은 정말 놀라운 일이지만 과거 1917년 러시아 혁명 전의 대중적 의사에 정책이 움직이는 포퓰리즘(Populism)으로 복귀하는 공간의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인도네시아의 회교가 전체 인구의 85%를 넘게 차지한다. 그들은 종교성이 강한 반면 경전의 가르침의 감화와 모하멧의 제자처럼 살아가는 사람들은 줄어들고 있다. 회교는 본래 정.종을 분리하지 않기에 NU의 총수였던 구스두르가 대통령이 되는 것에 아무 무리가 없었던 것이다. NU의 경우 대중적 핵심가치인 ‘관용’ 안에서 공동체의 결집이 든든히 서 가는 것에 대해 계속 교육을 하고 있지만, 결국은 지도자나 울라마의 의지와 생각대로 공동체가 움직여야 하는 것이 인도네시아 회교의 약한 점이다. 만약 울라마의 세계관이 자신의 작은 세력을 지키기 위해 자신에게 속한 회중들에게 세계와 변화를 열어놓기를 두려워한다면 그는 어떤 식으로든 공동체를 보수적인 가치로 설득하려고 하고, 회중들은 따라간다. 또한 지도자의 도덕성의 기준이 그들의 도덕적 가치의 바로미터가 되어 버리는 것이다. 그가 어느 한 사람을 지목해서 저는 옳지 않다고 했다면 그 지역에서 왕따가 되 버리기 쉽다. 자와인들만 거주하는 곳에 마두라 사람들이 이사를 오면 자와식으로 그를 밀어내어 마을을 떠나게 하는 것도 한 예다. 그들은 그것을 자신의 lingkungan을 Damai하게 지켜냈다는 자부심을 가지고 있다. 한 번은 집을 구하러 다니다 박 에르떼를 만나 이런 이야기를 들으면서 만약 이 동네에 이사올 경우 종교지도자와 관계가 서원해지면 같은 방법으로 밀려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인니의 사업장에서 이런 수직적 관계를 편안해하는 인도네시아인들에게 간혹 성격 좋고 차별 없이 사업하시는 한인들이 손을 털고 나오거나 오히려 당하는 경우가 있는 것은 그들의 세계관에 대한 이해 부족 때문일 때가 많다. 정해진 일은 자기 영역이라 잘 해내는 사람들에게 아직은 알아서 무엇을 해주기를 바라는 것은 시기상조이지만, 첨단과 근대적 사고와 습관의 공존을 가진 이중적 문화 같으나 한국에서는 쉽게 가질 수 없는 인간관계의 끈끈한 매력을 우위에 두고 함께 살아나가면 안 될 것이 없는 곳이 인도네시아의 매력이기도 하다.

사실 사회적 관계의 이상적인 구조는 세 변의 길이가 같은 정 삼각형구조가 아닐까 싶다. 이 트라이앵글은 무너지지 않는 구조이면서 머리가 존재하고 타인도 머리임을 인정한다. 로마시대의 삼두 정치가 역사를 화려하게 빛을 발했지만 힘의 균형이 깨어지면서 쇠락의 길을 걸었던 것을 역사가 말하고 있다. 이론은 알지만 실천의 연속성을 놓쳐버린 것이다. 자신이 죽거나 물러난 후에도 삼각형을 뒤집어 놓으면 그 안에 같은 역할을 해 줄 수 있는 지도자를 길러내는 것을 잊는다면 이기적 먹이사슬에 걸려 한 사람의 비극이 아닌 공동체의 운명을 바꾸게 된다. 대한민국은 이같이 바꿈이 가능하다. 먹이사슬의 인과율에 흔적 없이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내가 열심히 몸담고 있을 때 그 구조 안에 있으면서 공동체를 건강하게 양육시키는 것이다. 그것은 서로에 대한 배려이다. 사업도 정치도 심지어 종교적 목양도 혼자하는 것이 아니다.

개인도 자신의 삶의 터에서 그 일을 할 수 있다. 개인이 성장하는 것은 가정을 돌보고 양육하는 것이다. 내 세대가 지나면 새로운 세대(generation)가 건강하게 New Era를 이끌어 갈수 있는 동력을 제공하는 것이 그것이다. 좀 전까지도 지식 사회에서 정보를 가진 사람이 선점하는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지금은 정보를 나누어주고 그 안에서 창조적 사고를 현실로 이끌어내는 집단이 필요하고 그런 개인과 공동체의 영향이 세계화이고 세계를 바꾸게 된다.

필자는 사회학자이거나 미래학자와는 거리가 멀다. 사람들이 복음에 관심이 없는 것을 놓고 생각하다가 자신의 직접적 유익이 아니면 관심을 둘 수 없는 이곳 사람들의 삶을 내부자적으로 들여다 보는 외부자의 입장에서 고민했었다. 그들에겐 그저 무슨 말을 해도 이방인이다. 좁은 곳을 들여다보다가 유기적으로 얽힌 삶의 덩굴을 잡아당겨보니 점점 사회성을 띤 거대한 영역이 되어 나갔다. 그들 삶의 영향은 자신들이 알게 모르게 타인이 생산해내고 생각해 낸 것들 아래서 수동적으로 살아나가고 있는 것이다. 자기가 만든 것이 아니고 자기가 일을 저질러 해 낸 적이 없다면 남이 한 것을 따라가야 하고 거기에 타임테이블을 맞추어 살게 되는 것이다.

아이러니한 이야기지만 정치가들은 정치를 잘 모를 수 있다. 그 현장에서는 최정상을 등정해야 하는 등산코스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저 자리에 앉으면 나라도 이렇게 하겠다 라고 시민들은 쉽게 말할 수 있는 것 조차 하지 못하는 것은 그가 직접 압박을 당하지 않는 다수의 삶 보다 자신을 후원한 개인과 단체와 학연 지연의 관계가 지속적으로 요구하는 것을 실현해 주어야 하는 임무가 더 우위에 있기 때문일 수 있다.

보통사람들이 성직자에게 바라는 경건과 거룩 영적 영향력과 치유가 약하기 때문에 더욱 불신과 세속화가 빨라지는 것과 다르지 않다. 갈수록 빈부격차가 심해지고 있다. 사람들은 마음의 여유나 남을 생각하기 보다 더욱 개인적인 행복이나 가치를 소중하게 생각하고, 외모지상주의(lookism)에 시간과 금전을 허비하듯 정 재계 역시 재력이 있어야 하는 힘의 파노라마처럼 되어있다. 금권정치(Plutocracy)가 없어지길 바라는 것이 요원한 것 같지만 하나님께서 이 땅을 새롭게 하시는 것 외에는 방법이 없다. 그래서 기도의 제단을 쌓는 사람들이 통일을 바라는 것인지 모른다.

다수의 행복을 위해 사람들이 길을 만들어 온 신자유주의가 빈부격차만 심하게 다져 놓아가고, 있는 자도 가난하게 만들어 임계점에 다다른 것처럼, 더는 다른 대안이 없는 조국이 변화와 새로움을 따라가는 후발주자가 아니라 창조적으로 이끌기 위해 흩어진 재외동포들이 뭉쳐서 다음 세대에 아름다운 조국을 남길 일에 하나가 되었으면 하는 마음이다. 이것이야 말로 서로가 win-win이 되는 진정한 신자유주의의 한계를 극복하는 길이며, 오늘 자신의 터전에서 열심히 살아가는 우리야 말로 값진 열쇠를 쥐고 있는 사람들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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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12.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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