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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교에세이

가정과 하나님나라

 

김요한

 

 

들어가는 글

가정을 사랑의 공동체로라는 슬로건으로 이 땅에 그리스도 예수에 대한 믿음을 양심적인 신앙실천으로 살아내고자 하는 하나님나라의 공동체인 ()양실회의 선교센터에서 질그릇 속의 보물이라는 제목의 선교간행물을 펴내게 된 것을 축하드리면서 글을 시작하고자 합니다.

현대사회를 특징짓는 두 가지의 경향을 이야기하라고 하면, 대부분 불확실한 미래와 삶의 가치 및 도덕 등의 상대화라고 이야기했을 때에 고개가 끄덕여질 수 있을 것입니다. 이러한 시대적 특징은 인문사회과학의 문헌자료들에서 대세로 발견되지만, 자연과학의 총아인 현대물리학의 출발이 양자역학의 기초를 이루는 하이젠베르그의 불확정성원리(Uncertainty Principle)와 아인쉬타인의 상대성원리가 그 영향력을 끼쳤다는 것을 알 필요가 있습니다. 이러한 원리가 등장한 시기도 전 세계가 전쟁의 공포와 불확실한 미래 가운데, 같은 종교를 국교로 하는 나라들조차도 서로 상대에 대한 걷잡을 수 없는 증오로 끔찍한 살육전을 벌였던 1·2차 세계대전이 한창이던 20세기였음을 알 필요가 있습니다. 대부분 소위 선진국이라고 불리는 서구 중심의 나라들이 제국주의와 식민주의의 기치 아래 주도했던 끔찍한 살육전이었습니다. 이러한 엄청난 전쟁은 지구를 쪼개버릴 수 있는 위력의 무기인 핵폭탄 리틀보이가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떨어짐으로써 종식되었습니다. 지구 종말이 올 수 있다는 것을 목격한 인류가 드디어 싸움을 멈추었던 것입니다. 어찌 보면 악을 제어하기 위하여 더 큰 악을 사용한 것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이후 온 세계는 평화를 외치고 식민지 가운데에 있었던 수 많은 나라가 독립을 해가며, 선진국 주도하에 경제개발 이데올로기 가운데 온 지구는 끝 모를 경제성장과 산업발달을 추구해욌습니다. 물론 공산주의와 자본주의라는 양대 경제이데올로기가 전 세계의 나라를 양분 내지 삼분했고, 공산주의 이데올로기의 실현은 실패한 것으로 보여도 경제와 산업 성장 이데올로기는 여전히 막강한 힘을 쓰고 있습니다.

거의 100 여년 이상이 이러한 세계적 추세로 흘러오면서, 소위 선진주도개발국의 큰 맹점이 인간사회의 기초라고 할 수 있는 가정의 파괴 혹은 소멸과 극단적 개인주의의 확산으로 드러나게 되었습니다. 여기에는 자연스럽게 인권 및 인간성의 상실과 물질로 평가되는 가치관이 인간사회에 자리하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모든 현상을 지켜보면서 우리가 다시 생각해볼 점은 국가와 개인과의 관계뿐만 아니라 가정의 의미에 대한 근본적 재고입니다. 인간의 삶과 교육을 통한 가치관의 형성은 사회생활을 통하여 이루어지겠지만, 언제나 그 출발은 가정에 있다고 보야야 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물론, 가정에 대한 정의도 포스트모던 시대에는 변화하고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그러나, 인류 문명과 사회의 근간을 이루고 있는 것은 개개인이 속한 삶의 가장 작은 단위라고 할 수 있는 가정이기 때문입니다.

양실회는 이미 가정의 중요성을 깨닫고 가정을 사랑의 공동체로 만드는 것이야말로 세계 평화에 기여하는 일이요, 인간성 회복의 토대가 된다는 것을 확신하며 그리스도 예수 신앙을 실천하고 있습니다. 본 소고를 통하여 21세기의 코로나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는 가정에 대한 어떤 마음의 자세를 가져야 되며 구체적으로 무엇을 실천해야 할지 함께 생각해보고자 합니다. 특히, 지금 인류는 엄청난 산업과 경제성장을 이룬 포스트모던 시대를 지나 다시 전세계적 경제불황과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이 극대화되면서, 인간보다 인공지능(AI)을 더욱 신뢰하여 미래를 위한 대안으로 기대하거나, 이제는 전지구 온난화와 자연재해로 더 이상 미래가 없는 지구를 탈출하기 위한 궁극적 우주개발에 희망을 거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더욱이 지금은 코로나라고 하는 전 지구적 역병이 삶의 형태를 완전히 뒤바꿔 놓았습니다. 다시금 지구상에서의 인간 존재에 대한 본질적 의미를 생각하게 됩니다. 인간 존재의 본질과 지상에서의 존재 양식을 다시 근본으로 돌아가 생각해보아야 할 때입니다. 그러면 다음 장에서 이러한 관점에서 과연 가정이란 무엇인지, 특히 코로나 시대를 경험하고 있는 현시점을 고려하여 고찰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2. 코로나 시대와 가정의 의미

2019년 말부터 전 지구를 뒤덮는 판데믹 역병 코로나19(COVID-19)는 여전히 진행형으로 이제는 심한 독감 모양의 위드 코로나(With CORONA) 시대를 예고하고 있습니다. 지난 2년간 전 세계는 신유목민 시대를 뒤로하고 국/내외의 항공 여행과 집단 모임이 크게 제약을 받게 되어 집안에 머무르는 시간이 많아지고 자연스럽게 가정의 구성원들이 예전에는 바쁘고 쫓기는 일상 가운데에 생각지도 못했던 자연스러운 집안 모임을 가질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는 자연스럽게 미처 생각지 못했던 가정의 의미와 구성원들 간에 형성된 새로운 유대관계의 중요성을 상기시켜주었습니다.

부산대학교 철학과의 주광순 교수는 멀고 가까움이라는 키워드를 사용하여 코로나 이후의 삶에 대한 전망의 글을 발표한 바 있습니다. 그는 포스트 코로나 시대에 국가와 사회에 어떠한 역할이 주어질 것인가 고찰하면서, 경제개발 이데올로기 시대를 통하여 극대화된 개인의 자유와 권리들의 의미에 대해서 반성하고 또한 우리가 왜 새로운 세계질서에 대해서 새롭게 사고하는지 묻고 있습니다. 코로나 시대를 통하여 결국 사회의 공동체성의 중요성이 새롭게 대두된 긍정적인 면이 있었음을 말합니다. 우리는 사회의 공동체성에 대한 중요성을 아마도 초등학교 사회생활로부터 교육받고 훈련되었을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개인화되고 경쟁적인 산업주도 사회에서 살아남기 위해서 모든 것을 자기중심적 개인 위주의 사고와 생활습관에 익숙해지면서 개인화된 생활패턴과 사고 속에서 결국 각 개개인은 사회의 부속품처럼 기계화되고 이는 인간성 상실로 이어진 것도 사실입니다.

이러한 상황 가운데에서 전통적 교회 구조 가운데 모여든 개개인 신자들은 공동체성을 강조하는 회중예배에서조차 관람객으로 전락해 버리고 말았고, 예배의식은 성도간의 교제는 고사하고 몇몇 담당자들의 퍼포먼스로 무대화되고 말았습니다.

코로나 시대를 지나오면서 새롭게 그 가치의 중요성이 확실하게 되살아나고 있는 것이 있다면, 바로 가정이라는 운명적 공동체입니다. 앞서 살펴본 바와 같은 20세기를 지나 21세기 코로나 시대를 경험하기 전까지 공산주의 사회에서는 물론이요 자본주의 사회에서도 가정은 철저하게 본래적 존재 가치가 외면되어 왔음을 알 수 있습니다.

코로나 시대를 통하여, 무한 가속페달을 밟고 산업과 경제발전을 위하여 질주하면서 자연생태계의 파괴까지도 서슴지 않았고 물질주의 및 기계화의 사회 구조 가운데 인간성은 완전히 상실되어 인간존재 의의조차 도전받던 불확실과 상대적 가치에 찌들은 짙은 먹구름 같은 시대가, 가정이라는 따스한 인간미 넘치는 사랑의 교감이 있는 공동체로의 회복 가능성을 인류 사회 곳곳에서 맛보고 있다고 여겨집니다.

그러면, 코로나 시대를 통하여 되찾게 해준 가정의 의미는 무엇일까요?

첫째는 가정은 상실된 인간성이 회복될 수 있는 유일한 곳입니다. 예로부터 가정에서 버림을 받거나 온전한 사랑의 체험을 갖지 못하고 성장한 사람들의 경우에 사회에 대한 부적응자가 될 소지가 많음은 잘 알려져 있습니다. 이는 깨어지는 가정의 이유가 무엇인지 역추적해보면 잘 알 수 있습니다. 미주 가정선교회 대표 이재근 목사는 가정파탄의 10가지 원인에 대하여 말한 바 있습니다. 그는 메마른 인간성이 가정을 파탄나게 한다고 하면서, “도시화, 산업화, 부부중심의 핵가족화 등으로 부정(父情)과 모정(母情)이 상실되어 메마른 정서, 메마른 인간성으로 인하여 가정이 무너져가고 있습니다.”라고 말합니다. 이는 온전한 가정은 인간성 회복의 가장 기본적인 인큐베이팅 장소임을 알 수 있습니다.

둘째 코로나 시대의 모임에 대한 인원 제한에도 가족행사 및 모임에는 여타의 다른 사회모임 보다 그 숫자에 어느 정도 유연성을 인정합니다. 이는 가정의 운명공동체성을 자명하게 보여주는 사회적 공감에서 나오는 것입니다. 가정은 새로운 생명이 태어나며 인간으로서의 처음 유대관계가 형성되는 실질적이며 운명적 만남의 현장입니다. 코로나 시대가 보여주고 있는 새로운 현상이 가정의 운명공동체성에 대한 재확인입니다.

셋째로, 가정은 자녀교육의 최우선적 장소임이 재확증되고 있습니다. 이전에는 아이들이 학교에 가게 되면 모든 교육의 주도권을 학교라는 가정과 격리된 장소에서 규격화된 시스템 가운데에 맡겨지게 되어 세상적 세계관으로 획일화되는 경향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아이들이 소위 언텍트(Untact) 혹은 온텍트(Ontact) 온라인 화상교육을 가정에서 하게 되므로 부모와의 의사소통 기회가 더욱 많아지게 되었습니다. 가정은 사랑의 유대관계 면에서 그 어떤 사회 조직 보다 가장 적합화된 시공의 공유가 이루어지는 곳입니다. 코로나 시대의 제한된 학교생활이 오히려 가정교육의 중요성을 깨우치고 있습니다.

넷째, 예수 신앙인들에게는 가정을 예배공동체로 회복시키고 있습니다. 코로나 이전에 예배는 전통적이고 제도적인 교회당에서 드려지는 것으로 당연시되었고, 교회당에서 드려지지 않은 예배는 온전한 예배가 아닌 것처럼 여겨지기도 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사마리아 여인과 이루어진 예배에 대한 담화에서 진정한 예배란 유대인들이 예배의식을 위하여 모이는 예루살렘도 아니요 사마리아인들이 진정한 예배의 회복을 기다리며 장소로 사용하던 그리심 산도 아니라고 하시면서, 장소에 불문하고 진리이신 예수님과 그의 거룩한 영 안에서드려지는 예배가 진정한 예배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사실 초대교회는 대부분 가정이었습니다. 그러한 가정이야말로 진정한 예배가 이루어졌던 곳이었던 것입니다. 이에 대해서는 다음 장에서 보다 자세하게 고찰하도록 하겠습니다.

다섯째, 가정은 세대간의 교제가 이루어지는 곳임을 재확인시켜주고 있으며, 세대차이의 극복에 대한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앞서 이야기한 것과 같이 가정의 구성원들 간에 만남의 기회가 많아지고, 함께 예배를 드릴 정도의 감정과 신앙적 유대관계가 새로워지면서 단절되었던 세대간의 대화가 재개되고 있기도 합니다. 세대간 하나님나라의 정신이 이어져 가야하는 중요성과 그것은 가정이라는 운명적 신앙공동체를 통하여 이루어지다는 것을 다음에 이야기할 것입니다.

사실 이상과 같은 가정에 대한 의미의 재확인은 포스트모던 시대에 사람들은 어떻게 가정을 생각해 왔으며, 코로나 시대에는 가정에 대한 이해가 어떻게 다시 확인되고 있는지 선이해가 필요한 것도 사실입니다. 1960년대 이후 서구 중심의 포스트모던 시대의 가족의 특징에 대하여 서수경은 다원화’, ‘개인주의화’, ‘탈제도화현상을 들고 있습니다. 이러한 현상은 익히 우리의 지난 경험을 통하여 한국 가정도 경험해오고 있습니다. 코로나 시대를 통하여 우리가 가정의 진정한 의미를 재발견하고 있는 지금의 상황이야말로 그리스도인들에게는 역사의 전환기를 맞이하고 있음을 자각하고 지상 가정 존재의 근본적 이유에 대한 성경적 재조명과 실천이 필요할 것입니다.

 

3. 신령한 집으로서의 가정과 하나님나라

본 장에서는, 앞서 살펴본 약간의 그리스도 예수 신앙인의 관점이 가미된 일반적인 가정에 대한 이해를 배경으로 삼아, 보다 성경적인 관점에서 가정에 대하여 고찰하고자 합니다. 이는 전통적인 가정관이라 생각할 수 있겠기에, 포스트모던 시대를 지나며 독거 및 독신 생활이 일상화되고 결혼을 해도 자녀를 갖지 않겠다고 하는 젊은 세대들이 늘어나는 등 기껏해야 부부나 부부를 포함한 한두 자녀를 포함하는 핵가족 시대를 경험해온 일반인들에게는 다소 이질감 있는 내용일 수도 있습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시대가 변해도 하나님의 말씀은 변하지 않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물론 말씀에 대한 해석은 시대에 따라서 달라질 수 있으나, 상대주의에 익숙한 세계에서도 진정한 그리스도인들은 유일한 최고의 절대적 권위로 성경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습니다. 우리가 성경 말씀을 상고하면, 가정은 우리가 생각하는 사회의 가장 기초가 되는 제도나 조직 이상의 의미가 있고 하나님의 인간을 향한 섭리적인 계획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는데, 본 장에서는 그것을 이야기하고자 합니다.

첫째, 가정은 인간이 죄를 짓기 이전 하나님의 창조시에 이미 물질적 세계와 영적인 세계를 포함하는 전 우주적 하나님나라를 인간이 온전히 다스리도록 하기 위하여 만들어진 제도인 것입니다.

둘째, 처음 인간이 죄를 범함으로 가정에 파탄이 찾아옵니다. 부부 사이에 갈등이 일어나고 심지어 자식들 간에 다툼과 살육의 상황까지 전개됩니다. 결국 인류는 깨어진 가정에서 성장하는 사람들이 많아지면서 가정 자체를 경시하거나 세대적 단절이 일반화됩니다.

셋째, 가정은 본래 하나님의 임재가 특별하게 이루어진 장소였습니다. , 하나님께서 직접 인류 첫 가정 구성원인 아담과 직접 교제하시기 원하셨고, 하나님의 명령을 직접 말씀하시며 아담과의 친밀성을 몸소 실천하셨습니다. 그렇게 가정은 본래적으로 하나님의 임재가 이루어지는 우주의 특별한 장소가 되었습니다.

넷째, 인간의 죄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인류 처음 가정의 소외는 생육하고 번성하면서 자연을 다스리고 하나님나라를 확장해야 할 인류의 운명이 바뀌어 생존의 문제에 봉착하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가정은 하나님의 일방적인 사랑이 아니면 자체로서 결국 하나님을 대적하는 자손들을 생산하고 서로를 증오하며 생존경쟁에서 이기기 위한 투쟁적 삶을 살아갈 수밖에 없게 되었습니다.

다섯째, 그리하여 하나님께서는 다시 인류의 온 가정을 회복시키시기로 하시고 노아의 가정과 아브라함의 가정과 야곱의 가정 그리고 이삭의 가정을 차례로 택하셨습니다. 그 가운데 야곱의 가정은 처음으로 이스라엘이라는 한 종족이며 나라가 되기에 이르렀고, 야곱이 하나님을 만난 것을 기념하여 세운 돌단을 하나님의 집, 즉 벧엘이라 이름하고 거기에 기름을 부어 하나님의 임재의 표식을 삼았습니다.

여섯째, 하나님께서는 유대 자손으로 이스라엘 왕이 된 다윗의 가정을 특별하게 하셔서 다윗의 아들 솔로몬을 통하여 성전을 완성하게 하심으로서, 하나님의 집, 즉 성전의 개념을 확실하게 하셨습니다. 성전은 사실상 앞으로 나실 메시아, 곧 하나님의 기름 부으심을 받은 자, 다시 말하면 하나님의 특별한 임재가 사람의 모습으로 이루어지는 그리스도의 모형이었지만, 사람들은 장소적 의미의 예루살렘 성전이 하나님의 특별한 임재가 있는 거룩한 곳이라 여겨, 그곳에서 예배드리는 것을 최고로 여겼습니다.

일곱째, 드디어 인류 역사에 기다리던 메시아가 오셔서, 그 분이야말로 바로 하나님의 집을 온전케 하시고 당신 안에서 하나님나라의 완성의 어떠함을 보여주셨는데, 그 분이 바로 나사렛 예수이십니다. 나사렛 예수의 제자가 된 베드로는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라고 하는 그 유명한 신앙고백을 하게 되는데, 예수께서 바로 하나님의 예언하신 그 메시아, 즉 그리스도라고 하는 고백은 사실 이제 하나님의 나라가 지상에 어떻게 다시 세워지고 확장해 갈지에 대한 하나님의 첫 창조계획 가운데 내포되어 있던 가정의 원리가 드러나게 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베드로의 고백을 공유하는 사람들은 바로 예수께서 주인(큐리오스)이 되시는 오이코스(가정/집안)로서 하나님의 집, 즉 교회가 된다는 것을 알 수가 있습니다.

결국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세우시는 가정들이야말로 바로 예수께서 주인이 되신 집안으로서 하나님의 집, 신령한 집이 되는 것입니다. 지상의 하나님나라는 영원한 전 우주적 하나님나라의 확장을 위하여 지상에서 준비되고 확장되어 가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가정들을 성경의 요한계시록에서는, 하나님께서 지상의 모든 족속과 백성과 방언과 나라라는 표현을 통하여 마지막 때에 부르시는 것을 알 수 있는 것입니다.

 

4. 아멘, 주 예수여 어서 오시옵소서

지구상에 확장되고 있는 하나님의 임재가 있는 가정들, , 하나님의 신령한 집(오이코스)는 하나님의 인류를 향한 처음 사명인 하나님나라 확장에 대한 주역이 되어야 함은 자명합니다. 베드로가 말한 바 신령한 집은 성령께서 임하신 가정입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집입니다. 하나님의 임재가 있는 가정에서 예수가 그리스도이신 것이 그 구성원들 사이의 교제(코이노니아)와 하나님의 임재에 대한 확증으로 드러나는 삶의 모든 행위들이 바로 하나님께 드려지는 예배입니다. 이렇게 지구상에서 하나님나라가 회복되고 확장되도록 하나님께서는 메시아 예수를 보내시고, 성령으로 충만한 가정들 즉, 신령한 집들을 세우시는 것입니다. 이러한 집들은 요한계시록 5:97:9을 보면, 세계의 모든 족속과 백성과 방언과 나라들 가운데에서 나아 오게 되는데, 이들을 보면 모두 집단 즉 공동체의 특징을 나타내는 일련의 단어들입니다. 이에 대한 기초가 되는 집단이 바로 가정입니다. 하나님나라의 관점에서는 이들 모두를 다 하나님의 집 혹은 가정이라고 부릅니다. 앞서 언급한 요한계시록의 내용은 완성될 하나님나라의 장관이 어떠함을 암시하고 있습니다. 그때에는 그렇게 하나님나라 가운데 속한 가정들은 어린양 예수님을 찬양하며, 완성된 하나님나라의 아무리 사용해도 부족함이 없는 하나님의 은혜의 선물들을 마음껏 누리면서 하나님의 모든 창조세계에 대한 다스림의 행위를 통하여 하나님의 임재 즉 하나님의 영광이 드러나는 진정한 예배를 영원히 지속할 것입니다.

그러나 지금 세상을 보면, 하나님의 집 즉, 신령한 오이코스 공동체들이 세워지지 못한 수 많은 종족들이 지구상에 있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예수께서 말씀하신 바, 대위임령이 바로 미전도종족을 향한 하나님나라의 선포와 확장으로서 선교인 것입니다. 그래서 마태복음 24:14에서 예수께서는 이 천국 복음이 모든 민족에게 증거되기 위하여 온 세상에 전파되리니, 그제야 끝이 오리라고 말씀하셨던 것입니다.

우리는 어떠한 상황 가운데에서도 희망을 가질 수 있습니다. 그 희망은 아멘, 주 예수여 어서 오시옵소서라고 하는 우리의 대망 가운데에 녹아 있는 희망입니다.

 

5. 나가는 글: 하나님나라는...

사람이 씨를 땅에 뿌림과 같으니 (4:26)

볼 수 있게 임하는 것이 아니요 ... 너희 안에 있느니라 (17:20-21)

먹는 것과 마시는 것이 아니요 오직 성령 안에 있는 의와 평강과 희락이라 (14:17)

말에 있지 아니하고 오직 능력에 있음이라 (고전 4:20)

 

이와 같이 하나님나라는 우리 안에서 세워져 가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왜냐면, 우리 가운데에는 특별한 것이 있기 때문입니다. 성경은 그것을 질그릇 속에 있는 보물이라고 표현하였습니다. 질그릇은 우리들입니다. 보물은 하나님의 최고의 임재, 아니 하나님 당신이신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시대가 아무리 변해도 가정은 온전히 보존되어야 합니다. 인류가 죄 가운데에 신음하는 동안 얼마나 많은 가정이 깨어짐을 경험했는지 이루 다 말할 수 없습니다. 성경은 그리스도 예수를 믿는 우리를 질그릇 속에 보물을 가진 자들이라고 합니다. 깨어진 가정들도 질그릇들입니다. 그러나, 그 질그릇에 성령의 기름이 담기면, 하나님의 집 즉, 신령한 오이코스가 되는 것입니다. 성령의 기름이야말로, 하나님께서 친히 부어주시는 기름입니다. 하나님의 온전한 기름을 부음 받으신 그분이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정말 깨어지기 쉬운 혹은 이미 깨어졌다 할지라도 그 질그릇 같은 우리 가정에 나드향 가득한 옥합을 깨뜨리고 예수님께 기름을 부은 막달라 마리아처럼 예수님을 모시게 될 때에, 우리 가정은 하나님의 집, 즉 예수께서 주인되시는 신령한 오이코스가 되는 것입니다.

성경의 오이코스는 기본적으로 3 세대가 함께 연결됩니다. 성령의 기름 부으심이 강력하게 역사하던 초대 예수 공동체는 요엘 선지의 다음과 같은 예언이 실현되었습니다. “말세에 내가 내 영을 모든 육체에 부어 주리니 너희의 자녀들은 예언할 것이요 너희의 젊은이들은 환상을 보고 너희의 늙은이들은 꿈을 꾸리라,(In the last days, God says, I will pour out my Spirit on all people. Your sons and daughters will prophesy, your young men will see visions, your old men will dream dreams.)”

여기서 너희는 이스라엘 족속입니다. 다른 말로 하면 하나님나라의 백성들입니다. 하나님나라의 백성들이 있는 하나님의 집, 즉 신령한 오이코스에는 이와 같이 기본적으로 3 세대가 함께 연결되어 있는 것을 보게 됩니다. 마치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그리고 야곱의 하나님을 우리가 언급하듯이 말입니다.

시대가 많이 바뀌어 가정의 구성원 즉 가족 간 그리고 세대 간 단절이 일상화 되었습니다. 지금 우리가 살아가는 시대에 온 가족이 함께 한 지붕, 한 울타리에 함께 거하기 어려울 수 있을지라도, 가족은 서로 영적으로 정서적으로 연결되어 있어야 함이 자명합니다. 하나님의 가족들은 더욱 그렇습니다.

이제 우리는 시대를 뛰어넘는 하나님나라의 본질로 돌아가 진정한 가정의 회복을 통하여 하나님나라의 확장을 꾀하는 동시에 더욱 더불어 함께 나누며 지상의 삶을 실천하면서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을 구해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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