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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교에세이

존 스타인벡(John Stenbeck)의 고백

                                                                           명드보라

신년이 되었습니다. 사랑과 기도에 빚진 자가 새해 인사를 드립니다. 늘 성령께 인도하심을 받고 삶에 기쁨과 성결이 다른 분들께 흘러 넘치기를 바랍니다. 여고 때 존 스타인벡의 “분노의 포도(The Grapes of Wrath)” 번역본을 읽고 ‘꿈을 가질 수 없는 미래’라는 단어가 머리를 떠나지 않았던 기억이 생생하게 남아있습니다. 가난도 순수하다고 생각했던 나이에 가난 때문에 영혼과 가정이 피폐해지는 사회상을 고발한 그 소설은 가히 충격이었습니다. 얼마 전 우연히 그가 “Travels with Charley” 안에 남긴 짧은 영문 글을 읽으면서 그라는 사람에게 두 번째 거울을 선물 받은 느낌입니다.
(I was writing of something that I did not know about,…this is criminal)
나는 내가 알지 못했던 것을 써왔습니다. 이것이 범죄입니다.

그의 책은 전세계로 팔려 나갔고, 명성도 얻었는데 이 짧은 고백의 문장은 그의 긴 소설보다 더 여운이 남습니다. “분노의 포도”는 적대국에 의해 미국에 대한 불미한 선전물이 되는 것 때문에 금서조치도 당했으나 노벨문학상을 탔습니다. 이 책엔 경제 대공황으로 은행에 땅을 빼앗기고 살기 위해 길을 떠나는 가족과 무리들의 고통스런 심장이 잘 묘사되어 있습니다. 저자 자신이 목화밭이나 공장에서 노동을 했었고, 삶의 터전을 잃고 떠나야 하는 이주민들과 함께 얼마간 동거동락 했던 그는 약자와 아픈 자의 편에 서려다가 공산주의자로 FBI의 추적을 받기도 했습니다. 러시아의 유명한 소설 “닥터지바고” 역시 비슷한 길을 걸었고 작가인 보리스 파스테르나크도 같은 상에 수상된 분입니다. 노벨상에 무슨 절대적 가치를 부여하려는 게 아니라 당시엔 지금처럼 미디어가 발달되지 않아 그렇게 알려지지 않으면 세계도처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 지 지식인들조차 감감하기 때문입니다. 중산층이 빈민이 되고, 빈부의 간격이 커지고, 전쟁으로 대중이 가난하게 될 때는 성직자도 작가들도 의식을 가진 인텔리들은 너나없이 대중의 무너지는 삶을 함께 힘들어했습니다.

그 때와 비슷한 다수의 고통을 가진 지금 교회와 지도자들은 거짓을 고치고 있습니까, 가만히 눈감고 있습니까? 예수 이름으로 이런저런 일을 아름답지 못하게 한 일이 미디어 매체를 통해 세상에 그대로 나가는데 그것을 지켜보는 세계인들은 “대한민국 교회와 목회자와 장로들은 갈 때까지 다 같다” 그래서 무신론자들이 목소리를 높이고, 안티 기독교가 생기는 것입니다. 소리를 질러야 할 때 침묵하면 나귀와 돌들이 일어납니다. ‘당신이 우리를 살게만 해주면 모르는 척 하겠다!’ 확증 없는 밥그릇 때문에 주님을 십자가에 다시 달겠습니까?  많은 사람들이 시인 윤동주를 사랑하는 이유가 무엇이겠습니까? 그의 순수함과 대중의 가슴이 그의 시에서 느껴지기 때문입니다.  

주님의 선교가 우리의 선교가 되고, 주님의 목양이 내 목장의 양떼가 되고, 찍어내는 수 많은 인쇄물들은 대체 어떤 가치가 있습니까! 이 모든 게 영혼을 살리고 사람을 살리려고 하는 것인데, 침묵과 묵인과 그런 일에는 튀지 않으려고 숨죽이고 있다는 것도 나쁜 사람들을 변호하고 동조하는 것만큼 불명예스러운 일입니다. 2008년엔 회개와 성결운동으로 낮게 앉아야 합니다. 운동을 보이기 위해 옷을 같은 색으로 맞추어 입는 일도 삼갔으면 합니다. 지금도 진실되게 애쓰고 주님만 바라보는 많은 목회자들과 성도들의 기도와 눈물을 생각하면 단체로 맞추어 입는 양복 한 벌에도 그들의 가슴은 불편합니다. 오지 농어촌과 미자립 교회 목회자들과 선교사들도 양복 하나 변변한 것 없이 묵묵히 일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예수를 모르는 사람들도 목회자는 경건하고 성결하며 영성이 충만하기를 바랍니다. 동서고금을 통해 변하지 않는 갈망이 그것입니다. 어쩌면 주님의 십자가를 욕되게 하는 것은 교회가 아니라 십자가를 떠드는 알지 못하는 우리들 때문 입니다.

대중의 삶을 누구보다 잘 아는 존 스타인벡이 자신이 알지 못하는 것을 써왔다고 고백한 것이 가슴에 박혀버렸습니다. 성육신하신 예수께서 바리새인이나 제사장 집단과 어울리지 않고 약하고 병들고 죄의 짐으로 고통 당하는 사람들을 회복시키는 일을 하셨는데 우린 그 분의 명함을 들고 예수회사의 간부 노릇하며 월급 받은 것이 아닌가 두렵습니다.  “주여, 우리가 알지 못하는 것을 설교하고 써왔고 가르쳐왔습니다. 이것이 죄입니다” 이것이 죄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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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12.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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