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한 번의 임재 방식의 변화


구약에서의 신앙의 본질이 예수님 시대에 임재 방식의 변화가 이루어졌다. 친히 임마누엘이신 예수 그리스도 그분의 임재로 바뀐 것이다. 그런데 부활 승천하신 예수님이 다시 재림하여 자신의 백성들과 함께 할 때까지 또 다른 임재 방식으로 친밀한 관계를 맺으신다. 그것은 성령이다.


A. 또 한 번의 임재 방식의 변화에 따른 죄 사함과 구원의 방식의 변화


죄 사함에 대한 권세를 예수님이 가지고 계셨다. 그래서 그분께 오는 자마다 예수님은 죄를 사해주셨다. 그것이 그분이 오신 목적이었다. 이제 예수님은 영원한 죄 사함에 대한 일을 하시기 위하여, 십자가로 나아가신다. 그것은 또 다른 임재의 변화에 대한 죄 사함의 방식의 변화이다. 우리를 구원할 뿐만이 아니라, 매일 하나님 앞에 나아가는 데 있어서 십자가 대속의 사건은 우리를 죄 사함의 길로 인도한다. 복음서 내용의 과반수가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에 집중되어 있는 것은, 십자가 사건이 임재 방식의 변화에 핵심 사건이기 때문이다. 요한복음 6장 53절에서 56절까지는 이러한 십자가 사건이 과거와 현재와 미래에 영향을 주고 있는 것을 말하고 있다.


첫 번째,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것이 영생을 얻게 됨과 동시에 미래의 구원을 이야기하고 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인자의 살을 먹지 아니하고 인자의 피를 마시지 아니하면 너희 속에 생명이 없느니라.”, ei\pen ou\n aujtoi'" oJ !Ihsou'", !Amh;n ajmh;n levgw uJmi'n, eja;n mh; favghte th;n savrka tou' uiJou' tou' ajnqrwvpou kai; pivhte aujtou' to; ai|ma, oujk e[cete zwh;n ejn eJautoi'".”(요 6:53)


위의 본문에서 인자의 살을 먹는다(favghte)와 마신다(pivhte)는 ‘가정법 현재’로써 현재 시제를 말하고 있다. 생명이 없다(oujk e[cete)는 현재형이다. 즉, 과거로부터 현재와 미래에 이르기까지 십자가 사건의 경험이 없으면 지금 현재 생명이 없다.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자는 영생을 가졌고 마지막 날에 내가 그를 다시 살리리니”, “ oJ trwvgwn mou th;n savrka kai; pivnwn mou to; ai|ma e[cei zwh;n aijwvnion, kajgw; ajnasthvsw aujto;n th'/ ejscavth/ hJmevra/.” (요 6:54)


“내 살을 먹고(trwvgwn) 내 피를 마신다(pivnwn)”의 시제는 모두 현재형이다. 또,“영생을 가졌다(e[cei)”는 현재형이다. 이것은 지금 십자가를 영접하는 사람에게는 영접과 동시에 영생을 소유하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고, 과거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건을 통하여 인격적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한 사람은 과거에 영접함과 동시에 영생을 이미 소유하고 있는 것을 말한다.

 

그리고 “다시 살리다(ajnasthvsw)”는 미래형으로써, 십자가 사건의 경험으로 인해 미래에 다시 살릴 것을 말한다.

 

예수님은 이 말씀을 하실 때 십자가에서의 구원을 염두에 두신 것 같다. 죄인 된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보혈을 의지하여, 그의 대속과 부활을 시인하고, 인격적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면, 우리에게 구원을 주신다는 약속을 지칭한다. 이것은 과거든 현재든 미래에 한번 일어나는 일이다. 예수 그리스도를 처음으로 인격적으로 만남으로 인하여 일어나는 놀라운 기적을 지칭하는 것이다.


두 번째,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것이 현재 계속 진행되고 있는 현재의 의미이다.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자는 내 안에 거하고 나도 그의 안에 거하나니”, “oJ trwvgwn mou th;n savrka kai; pivnwn mou to; ai|ma ejn ejmoi; mevnei kajgw; ejn aujtw'/. ”(요 6:56)


내 살을 먹고(trwvgwn), 내 피를 마신다(pivnwn)는 주님의 말씀의 시제는 현재형이다. 이것은 과거에도 십자가를 경험하였고, 현재도 십자가를 경험하고 있고, 미래에도 역시 십자가를 경험하고 있는, 늘 십자가를 경험하고 있는 현재의 의미이다. 매일매일마다, 시간시간마다, 순간순간마다 십자가를 의지하여 하나님 앞으로 나아가야 하는 우리 일상의 임재 생활의 중요한 핵심을 이야기 하고 있는 것이다.

 

십자가를 통하여 과거에 일어난 죄 사함뿐만 아니라 현재에도 십자가의 보혈의 능력을 믿음으로 받아들임으로, 예수님이 우리 안에 우리가 예수님 안에 사는 하나님과의 친밀한 교제 즉, 그리스도의 임재가 이루어진다. 그리스도의 임재 가운데 있기 위해서는 자신의 죄에 대한 해결책이 기초가 되어야 한다. 이러한 임재의 변화는 십자가 사건을 기초로 한다.


B. 임재 방식의 또 다른 변화를 인식한 제자들


예수님은 제자들을 가르치시고, 마지막 시험을 치신다. 종합시험 문제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마 16:15)라는 질문이다. 베드로는 확실하게 임재 방식의 변화를 알게 되었고, “주는 그리스도(Su; ei\ oJ Cristo;")시오,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oJ uiJo;" tou' qeou' tou' zw'nto").”(마 16:16)라고 고백하였다.

 

하나님의 아들은 일반적으로 ‘하나님께 사랑을 받은 자’로 앞에서 설명하였다. 그러나 좀 더 깊이 들어가 다른 각도에서 설명하고자 한다.

 

히브리 개념에서의 ‘메시아’는 하나님이 특별히 선택하신 자이며, 헬라적 개념으로써 ‘하나님의 아들은’ 인간이 신적인 능력을 가지는 존재를 의미한 것이다. ‘하나님의 아들’이 히브리적 개념으로 ‘왕’을 의미1)할 수도 있고, 죄를 사하는 ‘제사장’2)을 의미할 수도 있었지만 쿰란 공동체의 개념으로 ‘하나님의 아들’은 메시야를 지칭하는 것으로 사용되었다고 볼 수 있다.3) 그러나 쿰란 공동체의 개념으로 해석해도 무방하지만, 헬라적 개념으로도 해석이 가능하다. 성경 본문에서 베드로가 ‘메시아’라고만 고백하여야 맞는데, ‘하나님의 아들’까지 언급한 것은 무언가 더 있기 때문일 것이다. 이러한 해석은, 히브리어로 만들어진 마태복음이 헬라인들이 이해할 수 있는 헬라어로 번역이 되었고, 헬라 문화에 적합하게 히브리 언어들과 개념들이 헬라적 언어와 개념으로 상황화 된 마태복음의 특성과 헬라인들이 가지고 있는 ‘하나님의 아들’ 개념을 생각할 때, 더욱 강력하게 가능성을 주고 있다.

 

단순히 히브리인의 ‘메시아’이심을 강조하기 위한 문구라기보다, 히브리적 개념과 헬라적 개념 모두를 포함한 예수 그리스도는 히브리인의 메시아일 뿐만 아니라, 헬라적 개념의 ‘하나님의 아들’ 즉, 신적인 능력을 가진 자를 포함하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4)

 

이 고백을 들은 예수님은 최고의 칭찬을 베드로에게 하였다.

 

이 말씀을 나눈 이후 예수님은 자신이 십자가에 죽임 당하실 것을 말씀하심으로 또 다른 임재 방식의 변화를 예고하셨다(마 16:21). 예수님이 말씀하신 것처럼 예수님은 십자가에 죽으시고 부활하셨다. 예수님의 부활 사건 이후 제자들은 예수님에 대하여 이제는 확실하게 알게 되었다. 그래서 부활하신 예수님을 뵈온 여자들이 예수님 앞에 경배하였다(마 28:9). 부활하신 예수님이 지시하신 산에서 예수님을 뵈옵고 경배하였다(마 28:17). 하늘로 승천하시는 예수님에게 경배한다(눅 24:52). 이제 제자들은 예수님이 누구인지 확실하게 알게 되었다. 그래서 예수님께 경배한다.


C. 예수님이 친히 약속하셨다


예수님은 하늘뿐만 아니라 땅의 모든 권세를 하나님이 내게 주셨다고 하시면서, ‘대 위임’을 하시고,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겠다.”고 약속하신다(마 28:18-20). 이제는 부활하신 예수님이 지상에서 우리와 함께 하지 못하지만, 친히 우리 가운데 임재하시겠다는 말씀이다.

 

이제 임재 방식에 또 다른 변화가 생겼다. 지금까지는 지상에서 살아계신 예수 그리스도의 임재였다. 그런데 이제는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임재가 항상 우리와 함께 하는 임재로 변하였다. 방법은 성령이다. 이제는 세상의 끝날까지 이러한 임재 방식에 변화가 없을 것이다. 하나님의 전권을 부여받은 하나님의 대리자로서 사람들과 항상 함께 계시는 “임마누엘”이 되셨다.


D. 보혜사를 보냄


예수님은 부활 승천 이후에 보혜사를 보내시겠다고 말씀하셨다(요 16:7). 보혜사(paravklhto")의 의미는 ‘대변자, 중재자, 돕는자’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또 예수님은 “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주사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있게 하겠다.”(요 14:16) 하셨다. 즉, 지금 보혜사는 예수 그리스도 자신이신데, 다른 보혜사는 부활 승천 이후 우리와 영원히 함께 있을 성령을 말씀하시는 것이다. 이 성령은 모든 것을 가르치고 예수님이 말씀하신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할 뿐만 아니라(요 14:26), 예수 그리스도 그분을 증언하실 것이다(요 15:26). 예수님은 보혜사 성령의 중요성을 이야기 하시면서, “내가 떠나가는 것이 너희에게 유익이라. 내가 떠나가지 아니하면, 보혜사가 너희에게로 오시지 아니할 것이요. 가면, 내가 그를 너희에게로” (요 16:17) 보내겠다고 하셨다.

 





예수님의 부활과 승천 이후, 성령이 임함과 동시에 예수님의 권능을 예수님을 따르는 자들에게 주신다(행 1:8). 예수님이 지상에서 그와 함께 하는 임재 가운데 권능을 제자들에게 주신 것 같이, 이제는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보혜사인 함께 하는 성령을 통하여 그 권능을 주시는 것이다.


E.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요한복음은 주님과 우리의 연합을 ‘그리스도 안에서(ejn Cristw'/ !Ihsou')’(요 16:33) 라고 하였다. “그 날(성령께서 임하신 오순절 날)에는 내가 아버지 안에, 너희가 내 안에, 내가 너희 안에 있는 것을 너희가 알리라.”(요 14:20) 새로운 임재 방식으로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 가운데 임재하신다. 우리가 하나님과의 임재 가운데 사귐이 있고 친밀한 교제를 나누는 것은, 예수님과 하나님 아버지의 연합 때문이다(요 17:23). 포도나무 비유를 드시며 예수님은 농부인 하나님 아버지께서 심으신 포도나무로, 우리는 그 가지로서 열매를 맺기 원하신다(요 15:4-7).

 

그리고 사도행전과 바울 서신은 계속하여 ‘그리스도 안에서’ 혹은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 안에서’(롬 5:11)라는 표현을 사용하고 있다. 바울의 구속의 이해의 근간을 이루는 ‘그리스도 안에서’도 바로 이 임재를 두고 하는 말이다.5)

 

열매를 맺는 데 필요한 것은 그리스도 안에 거하는 것이다. 이것은 임재이다. 임재 가운데 사귐이 있고 순종이 있다. 임재 가운데 거하면 주님의 말씀의 기준들이 풍성히 임하고 우리의 의지를 다스리시고 우리의 감정과 습관들을 교정하시며 죄에 민감하게 하여 날마다 십자가를 의지하게 한다. 또한, 끊임없이 하나님 그분을 갈망하고 찾도록 한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가 자신의 온전하고 유일한 모든 것 되는 삶으로 인도된다.


F. 생명


요한복음에서는 ‘하나님 나라’보다 ‘생명’이라는 용어로 하나님 나라를 설명하였다. 배재욱 교수는 “‘생명’ 개념이 공관복음에서 ‘하나님 나라’와 비슷한 의미로 사용된다.”6)고 말하였다7). 배재욱 교수는 연결되었다고 생각하였지만, 사실 하나님 나라와 요한복음의 생명은 같은 의미로 사용되었다. 요한복음 내용을 서신으로 받은 공동체에 ‘생명’이라는 단어로 신앙의 본질을 설명한 것이다. 생명은 신앙의 본질이요 예수 그리스도의 임재이며 구원이다.

 

김문경 교수는 “생명은 예수님 그분과 깊은 관련을 가진다.”8)고 하였다. 요한복음에 생명이란 표현이 자주 등장하는데 공관복음서보다 생명에 대한 강조가 분명하고 많이 등장한다.9) “생명은 하나님 자신과 관계된 생명으로 하나님의 아들이 아버지로부터 받아 소유하는 생명(요 5:26; 6:57)이다.”10)  성경은“영생은 곧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가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요 17:3)이라고 하면서 생명이 곧 예수 그리스도라 말하고 있다. 예수님은 ‘생명’ 자체(요 11:25)이다. 예수님은 ‘생명의 물’(요 4:10)이고 ‘생명의 샘’(요 7:38)이다. 예수님의 말씀이 곧 생명이다(요 6:63). 요한은 생명을 받아들이는 유일한 길은 예수님을 받아들이는 것이라는 사실을 말한다(요 14:6; 3:16; 5:24; 20:31).예수님은 하나님과 깊은 교제 속에서 누리는 생명을 그리스도인에게 선물하시는 분이시다. 이 “생명은 그리스도를 통한 하나님과의 교제 속에 나타나는 생명”이다.11)

 

바울도 같은 입장으로 생명을 사용하였다. 바울의 생명 사상은 그리스도는 생명의 주인이시고 그 안에서 성도로 부름을 받게 되고 그리스도와 함께 죽고 함께 사는 것이다. 그리스도인의 생명을 가진 자는 생명의 주인임을 인정하고 그분의 뜻에 순종하고 세상 속에서 빛으로 드러나는 것이었다.12)

 

요한일서에서는 ‘생명’을 임재로 말하고 있다.13) “태초부터 있는 생명의 말씀에 관하여는 우리가 들은 바요 눈으로 본 바요 자세히 보고 우리의 손으로 만진 바라”14), “아버지와 함께 계시다가 우리에게 나타내신 바 된 이시니라.”(요일 1:12)


G. 은혜


제리 브릿지즈는 은혜를 “하나님을 거역하는 사람들에게 하나님께서 손을 뻗치시는 것이다.”15)고 하였다. 하나님의 은혜는 구원의 은혜와 함께 삶의 은혜까지 포함하고 있다.

 

은혜는 율법으로 죽은 우리를 구원하는 은혜의 복음(행 20:24)이라 불리며, 바울이 자기가 받은 구원(롬 3:23-24)이나 소명(엡 3:7-8)이 하나님의 은혜였고, 바울은 모태에서부터 자신을 택정하고 부르신 소명이 은혜(갈 1:15)라 하였다. 자신의 소명을 감당할 수 있었던 모든 것(고후 1:12)과 다른 사도들보다 더 많이 수고한 것도 은혜(고전 15:10)이고, 자신의 의지조차도 성령님의 인도하심을 따라서 주님을 닮아가는 과정조차도 은혜(고후 12:9)라고 하였다. 은혜는 죄인을 회개케 하고, 거룩한 삶으로 유도하여, 결국 죄로 인해 이룰 수 없었던 ‘하나님의 영광’(롬 3:23)에 이르게 하는 하나님의 역사이다.16)

 

그러므로 은혜는 구원과 하나님 자신에게로 인도하는 모든 것을 포함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이것이 신앙의 본질을 이루시는 하나님의 임재가 하시는 일이다. “은혜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명하신 바를 우리로 실천할 수 있도록 우리에게 힘을 주시고 우리를 도우시는 하나님의 살아있는 임재이다.”17)


H. 그리스도와의 연합


사도 바울은 갈라디아서에서 이렇게 말했다.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산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몸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 (갈 2:20).


여기에서 사도 바울이 말한 주님이 우리 속에서 사신다는 것은 우리가 예수님을 영접하면 예수님께서 우리 속에 내주하시게 된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다시 말해서, 이 삶은 우리가 예수님을 영접하면 자동적으로 이루어지는 삶이 아니다. 에베소서 3장에서 사도 바울은 하나님의 백성들이 바로 이 삶을 살 수 있도록 그들에게 성령의 능력을 놀랍게 부어달라고 기도하고 있다.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께서 너희 마음에 계시게 하옵시고 너희가 사랑 가운데서 뿌리가 박히고 터가 굳어져서” (엡 3:17).


이것이 갈라디아서 2장 20절의 말씀에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다는 말에 대한 의미이다. 주님이 내주하시는 삶이 예수님을 믿기만 하면 자동적으로 이루어지는 삶이라면, 사도바울은 에베소교회 성도를 위하여 그들이 이 삶을 살 수 있도록 간절히 기도할 필요가 없었을 것이다.

 

여기에서 말하는 주님이 우리 안에 거하시는 삶은, 순간순간 예수님께서 우리의 삶 가운데 거하시는 것을 믿음으로 가능하다. 십자가를 의지하고 자신을 부인하며 하나님의 통치와 주권을 믿음으로 설 때 성령께서 내 안에 거하시는 삶 즉, 임재를 말한다. 임재를 통하여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의 삶을 주도해 가시는 삶을 말한다. 그분이 우리를 통해서 사시고 나타나시며, 그분의 뜻을 이루어 가시는 삶을 말한다. 이것은 주님이 주도권을 가지시지만, 우리의 연습을 요구한다.


I. 하나님 나라 개념에서 복음으로 변화


오늘날 많은 성도들은 ‘십자가’와 ‘복음’이라는 단어는 알지만, 자신의 삶에 어떻게 영향을 끼치고 있는지 알지 못할 때가 많이 있다. 또 어떤 사람은 처음 예수 그리스도를 믿을 때 다 습득한 것으로 생각한다.

그런데 성경은 이것을 매일매일 그리고 순간순간 경험하고 살라고 말하고 있다. 어떻게 해야 이 십자가 복음이 우리 삶 가운데 매일매일 그리고 순간순간 실제가 될 수 있는가? 이것이 우리 시대에 잃어버린 중요한 신앙의 실제이다.


1. 예수님에 대한 몇 가지 이론이 복음이 아니라, 인격체이신 예수 그리스도가 복음이다


복음에 대한 정의가 우리 시대에 많이 오해되고 있다. 근본적인 이유는 이성과 과학이라는 합리적인 사고가 서구의 모든 영역에 영향을 끼쳤는데, 신학에도 영향을 지대하게 많이 끼쳤다. 그래서 복음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 그분인데, 이성과 과학의 합리적인 사고에 맞게 설명한 것이 바로 지금 흔히 복음이라고 하는 것이다. 마틴 로이드존스는 교리가 인격을 대체한 것을 강하게 지적한 것과 같이,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교리가 인격을 대체해버린 것이다.

 

복음을 예수님에 관한 몇 가지 이론적인 사실이 복음이 아니다. 복음을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관련된 하나님이 죄 사함을 위해 흘리신 보혈의 공로를 영접하고 믿으면 구원받는다는 것으로 복음을 설명한다. 틀린 것은 아니지만, 이것이 복음의 전부가 아니다. 복음의 일부분이다. 복음의 핵심이지만 그것 자체로 복음이 아니다.

 

복음은 인격체 되신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 그리스도이다. 다른 말로 말하면,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 그리스도 그분과 친밀한 관계를 갖는 것이다. 이것은 3가지 중요한 요소가 있다. 예수 그리스도 그분이 자신의 유일한 모든 것이 되는 것과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 그리고 그분의 뜻과 의중에 자신의 인생을 조정하는 것을 포함한다. 신앙의 본질이 하나님을 드러내 보여주는 십자가의 예수 그리스도 그분 중심으로 변한 것이다. 이것이 복음이다.


2. 주님을 알기 힘써야 한다


사람은 인격체 되신 예수님을 만날 때 놀라운 삶의 변화가 일어난다. 예수님에 대한 몇 가지 사실을 듣는 것은 사람들에게 별 의미가 없어 보일 수 있다. 그러나 그들이 그 사실을 성령의 조명으로 예수님을 만나게 되면, 삶의 근본적인 변화가 일어난다. 그러므로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 그분을 알기 힘써야 한다. 우리는 그분을 아는 만큼 그분을 전할 수 있다. 만약 그분을 알지 못한다고, 그분에 대한 몇 가지 이론적인 사실만을 전한다면, 아무런 생명이 없는 말밖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또한, 삶에 아무런 변화를 주지 못하는 이론일 뿐이다.


a. 복음은 지식적인 앎이 아니라, 경험을 통한 인격적인 만남이다


“영생은 곧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의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니이다.” (요 17:3)


헬라적 의미의 ‘안다’는 뜻은 ‘지식적으로 안다’는 의미이다. 그러나 히브리적인 ‘안다’의 의미는 항상 인격적인 만남을 통하여 자신이 직접 경험하여 안다는 의미이다. 그러므로 예수님에 관한 몇 가지 지식을 아는 것이 복음이 아니다. 인격적인 만남으로 통하여 경험을 통해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 바로 복음이다.


“빌립이 이르되 주여 아버지를 우리에게 보여 주옵소서 그리하면 족하겠나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빌립아 내가 이렇게 오래 너희와 함께 있으되 네가 나를 알지 못하느냐 나를 본 자는 아버지를 보았거늘 어찌하여 아버지를 보이라 하느냐 내가 아버지 안에 거하고 아버지는 내 안에 계신 것을 네가 믿지 아니하느냐 내가 너희에게 이르는 말은 스스로 하는 것이 아니라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셔서 그의 일을 하시는 것이라 내가 아버지 안에 거하고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심을 믿으라 그렇지 못하겠거든 행하는 그 일로 말미암아 나를 믿으라.” (요14:8-11)


살아계신 하나님을 더 적극적으로 알고 사랑하는 길이 열렸다.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 그분을 알고 사랑하는 것이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는 하나님을 알 수 있는 모든 것이 있다. 그는 하나님의 계시자이시다.

 

4복음서(마태복음, 마가복음, 누가복음, 요한복음)의 이름처럼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과 하나님의 길로 사신 그 모든 삶, 십자가에서 모든 인류를 위한 대속, 부활, 그리고 마지막으로 남기신 그분이 가지고 계신 비전, 그 모두가 복음이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 그분의 삶 전부를 통해 하나님을 알고 사랑하는 모범을 배울 수 있다. 이것이 복음의 진정한 뜻인 ‘기쁜 소식’인 것이다. 더 이상 나의 죄 때문에 제사가 필요 없어졌다. 십자가에서 달리신 주님의 대속을 믿음으로 의지하고 하나님 앞으로 나아갈 수 있게 되었다. 어떻게 하나님을 알고 사랑하는지? 어떻게 하나님의 길로 하나님의 뜻과 의중을 이 땅에 이룰 수 있는지 모든 모범이 예수 그리스도의 삶 가운데 있다.


요한은 복음에 대하여 좀 더 구체적으로 이야기하고 있다.


“태초부터 있는 생명의 말씀에 관하여는 우리가 들은 바요 눈으로 본 바요 자세히 보고 우리의 손으로 만진 바라. 이 생명이 나타내신 바 된지라 이 영원한 생명을 우리가 보았고 증언하여 너희에게 전하노니 이는 아버지와 함께 계시다가 우리에게 나타내신바 된 이시니라. 우리가 보고 들은 바를 너희에게도 전함은 너희로 우리와 사귐이 있게 하려 함이니 우리의 사귐은 아버지와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와 더불어 누림이라.”(요일 1:1-3)


복음이 인격체인 예수 그리스도라는 것을 분명하게 말하고 있는 이 구절은, 그가 들었을 뿐만 아니라, 눈으로 보았고, 주목하여 보았고, 또 손으로 만져본 것이었다. 요한이 전한 복음이 예수님에 대한 몇 가지 사실들이었다면, 그는 단순히 그것을 들었다고 써놓았을 것이다. 그런데 요한은 생명의 말씀, 영원한 생명은 모두 똑같은 것으로서, 그가 들었을 뿐만 아니라 눈으로 보고 손으로 만져 본 예수님 자신이었다.

 

십자가 사건은 복음의 핵심이며 가장 기초이다. 그래서 복음서의 기자들은 복음서를 저술할 때 “하나님 나라”와 “십자가”에 초점을 맞추었다. 예수님 그분의 모든 것이 바로 복음이다. 복음은 이론이 아니라, 바로 인격체 되시고 지금도 살아계신 십자가의 예수 그리스도가 자신의 유일한 모든 것 되는 것이다.


b. 복음은 평생 동안 알아 가는 것이다


바울은 자신의 평생 동안 복음을 알기 원했다. 또한 그 복음의 진정한 의미를 깨닫고 동참하고 본받기 원했다. 단순히 이론이라면 그는 이론적으로 알고 있었다. 로마서에는 그러한 복음의 모든 핵심 기초가 잘 정리되어 있다. 그것은 복음의 핵심이다. 복음은 그 핵심 위에 세워지는 것이다. 그래서 바울은 복음을 자신의 평생 동안 알기 원했다.


“내가 바라는 것은, 그리스도를 알고, 그분의 부활의 능력을 깨닫고, 그분의 고난에 동참하여, 그분의 죽으심을 본받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나는 어떻게 해서든지, 죽은 사람들 가운데서 살아나는 부활에 이르고 싶습니다.” (새번역. 빌 3:10-11)


바울은 자신의 인생 전체를 통해 예수 그리스도 그분을 알기 위해 자신의 최고의 초점으로 두었다. 복음은 한 평생 우리가 추구하고 알아가야 할 신앙의 본질이다. 단순히 몇 가지 죄 사함을 시인하고 받아들이고 하는 몇 가지 이론을 동의하는 것이 아니다. 구약시대는 하나님 그분을 알고 자신의 인생의 유일한 모든 것 삼는 것이었다. 임마누엘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 그분을 알고 자신의 인생의 유일한 모든 것 삼는 것이 바로 기쁜 소식인 복음이다.

 바울은 자신이 인생을 통해 경험하고 알게 된 복음을 고린도전서를 통해 말하고 있다.


“너희는 하나님으로부터 나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고 예수는 하나님으로부터 나와서 우리에게 지혜와 의로움과 거룩함과 구원함이 되셨으니” (고전 1:30)


이 본문은 바울이 고린도 전서를 쓸 때까지, 자신이 깨닫고 경험하였던 복음을 말한 것이다. 바울은 한평생 예수 그리스도(복음)를 알고 사랑하는 것이 자신의 인생의 전부였다. 그런 그가 살아계시고 인격적인 예수님을 경험을 통해 만난 복음을 고린도 교회에 전한 것이다.

 

복음은 한 평생 알아가는 것이다. 또한, 우리는 한 평생 예수 그리스도 그분을 인생의 유일한 모든 것 삼아 사랑하는 것이다. 이것이 복음이다.


c. 복음은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 그리스도에 기초한다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 그리스도는 복음의 주인공이고 신앙의 중심이다. 위에서 요한복음 6장 53절에서 56절까지 십자가 사건의 의미를 설명하였듯이, 십자가 사건을 동의하고 시인하고 받아들이며, 인격적인 예수님과의 만남을 통하여 구원을 얻는다. 십자가 사건은 구원 이후 예수 그리스도와의 친밀한 관계 속으로 들어가는 임재에 있어서 우리의 순간순간의 죄 문제를 해결해준다.

거룩하신 하나님께 나아가는 방법은 십자가에서 죄를 사하신 그 사건을 믿음으로 의지하고 담대해 하나님께 나아가는 것이다. 이러한 십자가의 삶을 살아가는 실제는 예수님이 말씀하신 하나님 나라를 통하여 신앙의 실제를 알아가기로 하자.


3. 전도자 빌립은 변화된 예수 그리스도의 임재를 전하였다


전도자 빌립 집사는 유대에서 박해를 당하자, 유대 반경을 벗어나서 사마리아 성에서 ‘하나님 나라와 및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에 관하여 전도’(행 8:12)하였다. 여기서 유심하게 살펴보아야 할 것은, 왜 하나님 나라와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전했느냐이다.

하나님 나라가 바로 '신앙의 본질'임과 동시에 '임재'18)이다. 사마리아인들은 모세오경만을 정경으로 받아들이고 모세를 추종하고 있었다.19) 사마리아인에게 신앙의 본질을 전하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 즉, 그분의 인격과 성품 그리고 하신 모든 일을 전한 것이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임재가 예수 그리스도의 임재로의 변화를 전한 것이다.


4. 로마의 바울도 변화된 예수 그리스도의 임재를 전하였다


사도행전 마지막 부분에, 로마에 있던 바울도 “하나님의 나라를 증언하고 모세의 율법과 선지자의 말을 가지고 예수에 대하여”(행 28:23) 권하였다. 또, “하나님의 나라를 전파하며 주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모든 것을 거침없이 가르쳤다.”(행 28:31). 하나님의 나라와 예수 그리스도를 따로 떼어 내어 바울은 신앙의 본질인 하나님 나라와 하나님의 임재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임재로 변화된 것을 가르쳤다.20)

하나님의 나라를 너희는 빼앗기고 그 나라의 열매 맺는 백성이 받으리라(마 21:42) 하신, 유대나라(개개인 유대인이 아님을 강조)에 대한 예수의 예언은 이렇게 성취되었다. 그 열매 맺는 백성은 바로 “예수”의 이름을 믿는 백성이었다.21)



1) 삼하 7:12-16. 하나님은 다윗을 왕으로 세우시는데, 왕을 하나님의 합법적인 아들로 선언하신다.

2) 말 1:16. 이 본문에서의 하나님의 아들은 제사장을 의미한다.

3) R. H. Fuller, The Foindations of New Testament Christology, New Yark: Charles Scribner's Sons, 1965. p. 32. 쿰란 문서와 관계된 하나님의 아들에 대한 보다 자세한 연구는 D.G. Chen, God as Father in Luke-Acts, 제2장 2절 참고.

4) 그리스 문학에서는 아레탈로지(aretalogy)라는 문학형태로 훌륭한 사람의 뛰어난 생애와 경력을 표현한 문학형태가 있다. 기적적인 탄생과 조상이 신인점, 초자연적인 재능과 기적, 훌륭한 가르침, 순교적인 죽음이 특징이다. 헬레니즘에서는 신의 아들이라는 개념이었고 인간을 신으로 믿었던 경우도 있다. J.Z. Smith, "Good News Is No News: Aretalogy and Gospel", in J. Neusner, Christianity, Judaism and othe Greco-Roman Cults: Studies for Morton Smith at Sicty vol. Ⅰ (Leiden: Brill, 1975), 21; M. Hades, M. Smith, Heroes and Gods, p. 405. 참조.

5) 달라스 윌라드, 하나님의 모략, p, 427; 재인용 form Albert Schweitzer, The Mysticism of Paul the apostle, William Montgomery (New York: Henry Holt, 1931), 8장 ,pp. 160-176은 지금도 아주 소중한 것이다. 특히 164-170쪽을 보라. 다음 책도 참고 James Stewart, A Man in Christ(New York: Harper & Brothers, 1935).

6) 배재욱, “바울의 생명 사상 Ⅱ: 예수의 생명이해”, 기독교 사상 578(2007년2월호), pp. 204-205.

7) 막 9:43-47절에서 ‘생명’과 ‘하나님 나라’는 평행을 이루고, 눅 18:29-30절에서 ‘생명’과 ‘하나님 나라’는 서로 연결된다. 요 3:3-5절에 ‘하나님 나라’란 말이 나오지만, 요한복음에서 영생이 하나님 나라와 평행이 된다. 막 10:17-31은 ‘생명과 구원’이 평행되고 있다. 막 10:17에서 ‘영생’을,  10:23-25절에서 ‘하나님 나라’, 그리고 10:26에서 ‘구원’이 평행을 이루며 한 가지 목표를 지향하는 개념으로 표현되고 있다. 배재욱, "신약성경의 생명 사상에 대한 고찰", 선교와 신학 제22집, 장로회신학대학교 세계선교연구원, 2008. pp.45-82.

8) 요 1:25, 14:6; 계 1:18. 김문경, 요한신학, 서울:한국성서학연구소, 2004. p. 173.

9) 요한복음에서 생명이라는 단어를 19번 사용하였고, 영생이라는 표현을 20번 사용하였다.

10) 배재욱, “요한복음이 말하는 영원한 생명에 대한 소고”, 선교와신학 제14집(2004), p. 217.

11) 배재욱, “요한복음이 말하는 영원한 생명에 대한 소고”. op. cit., p. 212.

12) 배재욱, "신약성경의 생명 사상에 대한 고찰", op. cit., p. 61.

13) 달라스 윌라드, op. cit., p, 427.

14) 요일 1:1.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임재를 신인동형동성(Anthropomorthpism)적으로 표현하였다.

15) 제리 브릿지즈, 「넘치는 은혜 변화되는 삶」, 조성동 역, 서울:네비게이토 출판사, 1994. p. 21.

16) 박민수, “하나님의 은혜에 대한 교의적 연구”, 광신대 신학대학원, 2011. p. 13.

17) 여주봉, 「십자가의 복음Ⅱ」, 서울:요단출판사, 2011. p. 26.

18) 달라스 윌라드. op. cit., p. 429.

19) Alfred Edersheim, Life and Times of Jesus the Messiah. Grand Rapids: Eerdmans, 1971. p. 396. 참조. 사마리아인들은 모세오경만을 경전으로 선정하고 다른 구약의 모든 성경은 인정하지 않았다. 또한 사마리아인들은 그리심 산의 우월성을 주장하였다. 타헤브(Taheb: 스승)가 진정한 예배를 회복하기 위해 오는데 그것은 그리심 산에서 있을 것이라고 믿었다.

20) 달라스 윌라드, op. cit., p. 429.

21) Ibi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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