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김희주 입니다. 모든 분들 건강히 잘 계신지요.
아래에 제가 최근 겪은 일과 생각들을 에세이 식으로 적어보았습니다.



“마리암, 친구가 아파서 좀 찾아보려고 하는데 나랑 같이 가 줄 수 있어요?”

4월의 어느 날, 장을 보러 가는데 친하게 지내는 아줌마 한 분이 전화를 했다. 이름은 빠, 올 해 나이 50으로 나보다는 한참 손 위의 분, 큰언니, 막내 동생 격으로 친구가 되었다. 우리가 이 곳으로 이사 온지 얼마 되지 않아 옆집에 사는 총각이 결혼을 하게 되었는데 그 결혼식에 초대받아 신부 집 까지 차로 오가는 길에 이 아줌마를 태우고 함께 다녀온 이후로 친한 친구 사이가 되었다. 이 지역에서 가장 유명한 모스크 옆에 조그마한 장소를 빌려 커피, 라임음료수 등을 팔며 생계를 유지하신다.

“우리 아들은 오토바이를 하도 빨리 몰아서, 같이 타고 가다 보면 무서워. 바쁠텐데 괜히 귀찮게 한 건 아닌지…”

이 지역에 사는 주민들 중에는 이 아줌마처럼 차가 없는 집이 꽤나 있다. 워낙 도시가 작기도 하고 또 도시 외곽으로 나갈 일이 별로 없는 사람들은 그냥 오토바이만 있어도 교통이 그다지 불편하지는 않다. 그러나, 오늘 방문하는 가정은 도시 외곽 지역, 차로 약 40-50분 거리에 위치해 있다. 이에 더해 큰 도로에서 빠져 좁은 도로를 타고 인가가 거의 없는 길로 한참을 들어가야 했다. 그 동안 여러 지역을 다니며 정말 시골 같은 동네도 몇 번 가 보았지만, 이 날 찾은 장소처럼 완전히 소외되고 다른 사람들과 멀리 떨어진 동네는 또 처음 이었다.

집으로 들어서니 현관 밖에 서너 명의 남자들이 앉아 담배를 피며 담소를 나누고 있었고 집 안에는 약 15명의 부인들이 앉아 있었다. 집 안의 풍경은 전형적인 말레이 형태의 집이었다. 넓게 뻥 뚫린 공간에 한 쪽에는 텔레비전 및 장식장을 두고 거실처럼, 또 한 쪽에는 침대를 두고 침실처럼 사용하고 있었다. 그 침대 위에 몸이 불편한 할아버지가 누워있었다. 아줌마의 말처럼 힘이 없어 대화도 불가능한 채 그냥 침대에 누워서 며칠을 보내고 계셨다.

“앗살라무알라이꿈!” 몇 명의 부인들과 서로 손을 스치며 전통적인 방식으로 인사를 나누고 아줌마와 함께 거실 바닥에 앉았다. 대부분은 외국인인 나를 경계하는 눈초리로 힐끔힐끔 쳐다 보기만 한다. 그 중 몇 명은 말레이 방언으로 나에게 무어라 질문을 해 보지만, 말레이 말을 아직 못하기에, 또 그들은 태국 말을 못하기에 의사소통이 불가능했다. 나를 대신해 빠 아줌마가 나에 대해 쏟아지는 질문에 대답을 해 주었다. 묻지 않아도 무슨 질문을 하는지 경험을 통해 잘 알고 있었다. 대부분은 어느 나라 사람이냐, 왜 히잡을 쓰고 다니냐, 종교가 이슬람이냐, 언제부터 무슬림이었냐, 태국에 온지는 얼마나 되었느냐, 어느 동네에 사느냐, 무엇을 하느냐.. 등등의 질문이다. 아줌마가 무어라 답을 했는지 궁금하다기 보다는 그냥 나를 대신해 이 어렵고 민감한 질문들을 답해 줄 사람이 있다는 게 더 좋았다. 한 30분을 그렇게 대화를 나누며 앉아 있다가 아줌마가 일어나 몸이 아픈 할아버지 옆으로 갔다. 가서 살짝 손을 잡고 위로의 대화를 나눈 후 다시 돌아왔다.

신기한 현상은 그 이후에 나타났다. 처음에는 빠 아줌마가 가벼운 딸꾹질을 시작하더니 시간이 지날수록 그 증상은 더 심해졌다. 이제는 숨을 쉬는 것 조차 어려워 보였다. 그때까지만 해도 그렇게 이상하다고 느끼지는 않았고, 아줌마가 갑자기 알러지 증상을 보이는 건지, 점심때 먹은 식사가 체한 건지 궁금한 정도였다. 그런데, 아줌마가 나를 쳐다보며 이렇게 말하는 것이 아니겠는가.

“몸이 아픈 사람을 만지면 안 되는데, 오늘 잊어버리고 만졌더니 또 이렇게 되었네. 무서워하지 마세요. 몸이 아픈 사람과 접촉이 있으면 늘 이런 현상이 일어나곤 해요.”

나는 그제서야, 이것이 보이지 않는 어떤 영적인 작용인 것을 깨달았다. 그 동안 말로만 들어왔던 ‘Folk Islam’을 접하는 순간이었다.

Folk Islam, 현대를 살아가는 도시의 무슬림들은 이 포크 이슬람을 벗어나 좀 더 철학적이고 논리적이고 또 지식적인 이슬람을 추구하지만 빠 아줌마처럼 아직도 병을 고치는 신기한 능력을 가진 사람들이 활동하는 것을 보면 나이가 지긋한 어른들 사이에서는, 혹은 문명과 소외되어 한적한 곳에 가족단위로 살아가는 사람들 중 조금은 가난하고 교육을 덜 받은 사람들 사이에서는 아직도 포크 이슬람이 삶 속에 스며 있는 것이다.

이제 빠 아줌마는 거의 토할 지경에 이르렀다. 안 되겠다 느꼈는지 기도매트를 할아버지가 누워있는 침대 옆에 펼치고 그 위에 앉아 눈을 감고 이슬람식 묵주를 돌리며 기도를 시작한다. 그러더니 여전히 눈을 감은 채, 한 손으로 무언가를 더듬어 찾는 것이 아닌가. 옆의 부인들이 아줌마의 손이 닿는 지점에 히잡 하나를 두었다. 빠 아줌마는 그것을 손으로 집어 드는가 싶더니 손과 고개를 절래 절래 흔들며 이것은 아니라는, 혹은 이것은 안 된다는 모션을 취했다. 또 다른 히잡을 손에 하나 쥐어주자 또 동일한 반응을 보인다. 어떤 젊은 부인 한 명이 일어나 거실 저쪽 편에 있는 장롱 속 깊은 곳에서 다른 히잡 하나를 꺼내와 손에 쥐어주자 이것은 괜찮다는 표시를 한다. 옆의 사람에게 물어 보았더니 그 히잡은 사우디아라비아 메카에서 사온 히잡이란다.

히잡을 오른 손에 쥔 빠 아줌마, 일어나 할아버지 옆 침대 한 켠에 앉는다. 그리고는 그 히잡으로 마치 얼굴과 상체 부분을 씻는 듯한 행동을 취한다. 직접 닿지는 않게 살짝 공중 위에서, 그러나 정성스럽게 닦아내는 모습을 보였다. 그 때 이 아줌마의 증상은 극에 달해 그 자리에서 토를 했다. 사람들이 급하게 받칠 수 있는 그릇 같은 것을 주었다. 그 순간, 사람들은 마치 무언가가 다 이루어졌다는 듯한 안도의 숨을 내 쉬며 아랍말로 중얼거리며 기도를 했다.

병 고치는 듯한 행위를 다 마친 빠 아줌마는 이제 거실 한 켠으로 조용히 가서 기도예복으로 갈아 입고 홀로 라맛(기도의식)을 했다. 아줌마의 이상한 증세도 사라지고 없었다. 그 이후로 사람들과 함께 다시 담소를 나누고(나는 사람들의 호기심에 찬 시선을 일방적으로 받으며) 집으로 돌아왔다. 그 집을 떠나기 전 사람들은 고맙다는 표시로 아줌마에게 약간의 과일과 현금을 주었다.

이 날의 사건이 나에게 두려움을 주거나 우리들의 관계에 어색함을 주지는 않았다. 집으로 돌아오는 차 안에서, 아줌마와 다시 정답게 대화를 나누었다. 배움이 짧기에 아줌마는 태국어를 잘 하지 못하고, 나 또한 계속 배우고 있는 입장이어서 태국어를 자유자재로 시원하게 구사하지 못하기에 서로 짧은 문장만을 써가며 나누는 대화였지만 예전보다 더 친해진 느낌은 분명했다. 생각지도 못한 아줌마의 다른 면을 처음 본 날이었지만 이 분을 더 정확히 알 수 있게 되어서 좋았고, 아줌마 또한 일상 속에서는 쉽게 드러내 보일 수 없는 부분을 보여 주어서 인지 더욱 친근하게 느끼는 것 같았다.

며칠 후, 아줌마의 커피 집을 찾아가 담소를 나누다 그 할아버지는 완쾌 되었느냐 물었더니, 다 낳지는 않았지만 지금은 음식을 조금씩 먹으며 부축을 받고 거동을 할 수 있게 되었노라고 한다.

다양한 얼굴을 지닌 이슬람 신앙, 살면서 자연스럽게 알게 되는 이슬람의 모습은 우리로 하여금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든다. 처음에는 그냥 두려움의 종교, 어두움의 종교로 여겨지는 이슬람, 그러다가 이슬람에 대해 조금씩 알아갈수록 같은 점, 비슷한 점이 눈에 띄어 친근감조차 느끼게 된다. 하루 다섯 번 꼬박꼬박 기도하는 그들, 1년 12달 중 한 달을 꼬박 금식하는 사람들, 그것도 모자라 어떤 때는 자발적으로 더 금식하는 사람들, 하나님(알라)을 향한 그들의 이러한 열심은 우리를 부끄럽게 만들 정도이다. 알라의 이름을 의지하여 병을 고치는 빠 아줌마의 모습을 보고 있노라니 실제로 병이 낫는 다면 그것은 과연 알라 이름의 힘으로 말미암은 것으로 봐야 하는 것인가 아닌가 생각하게 될 지경이다.

삶의 구석구석에서 하나님을 인식하며 살고자 노력하는 사람들. 그러나 우리가 결코 잊어서는 안 되는 부분이 있음을, 그들의 종교가 그들을 구원할 수 없음을 성경은 명시하고 있다.

“아들을 부인하는 자에게는 또한 아버지가 없으되 아들을 시인하는 자에게는 아버지도 있느니라” (요한일서 2:23)

신앙을 삶에 일치시키며 살고자 하는 그들의 노력과 알라를 향한 신앙의 여정 속에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 어서 심겨지기를 기도할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