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시대에 적합한 하나님 나라를 시작하며
19세기 미국의 제2 대각성 운동(Second Great Awakening Movement)의 물꼬는 찰스 피니(Charles G. Finney, A. D. 1792-1875)라는 한 사람으로부터 시작되었다. 찰스 피니는 29살 회심하기 전 프리메이슨(Freemason)이었다. 그는 8년 동안 프리메이슨에서 활약(정식으로 활동한 것은 4년)하면서 3단계(모두 33단계까지 있음, 4단계가 될 때 정식 프리메이슨 맴버가 된다.)에 오르기까지 하였으나 영원히 이 프리메이슨을 떠난다고 선포할 때 그는 마스터 메이슨이 되는 맹세행위가 부도덕할 뿐만 아니라 프리메이슨은 정부에 대해 대단히 위험한 존재라고 폭로했다. 그 후 프리메이슨을 비판하는 책을 출판하기도 하였다.1)
그가 회심 한지 한 달도 채 되지 않았을 때,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의 임재를 경험하였다. 그리고 그는 프리메이슨 모임에서 여러 차례 진심 어린 회개 기도를 하였고, 그는 많은 고민을 하다 마침내 프리메이슨을 탈퇴하였다. 그가 프리메이슨을 탈퇴한 이유는 프리메이슨으로부터 그는 속았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그는 이렇게 고백하였다.
내가 얼마만큼이나 메이슨의 수많은 주장에 속고 있었는지 알지 못했었다. 그런 반영과 성찰, 치열한 투쟁과 열심 있는 기도로, 나는 더는 그들 무리 속에 남아 있을 수 없게 되었다. 나의 새로운 삶은 직관적이고도 어쩔 수 없이 내가 현재 “어둠에 속한 열매 없는 사역”이라고 부르는 메이슨 단체와 교제할 수 없게 되었다. 조용히 그 누구와도 상의하지 않고 그들에게서 떠날 마음으로 나는 마지막으로 롯찌를 찾아갔으며, 나를 롯찌에서 빼줄 것을 요청하였다. 나의 마음은 이미 결정된 것이다. 나는 내가 요청한 것을 그들이 받아주든 말든 나는 그들을 떠나기로 결정한 것이다.2)
한국의 프리메이슨은 다른 나라와 같이 한국 사회의 엘리트 집단이다. 로마 프리메이슨은 나를 선택하였고 한국의 프리메이슨에게 나를 회원으로 만들 달라고 요청하였다. 그렇게 지금의 한국 프리메이슨으로 발전시킨 386세대 주인공들과 관계를 갖게 되었다.
내가 신앙의 본질을 추구하기 시작하면서부터 지금까지, 주님은 나를 많이 다루시며 다듬으시고 가르치셨다. 특별히 하나님은 한국의 프리메이슨을 통하여 나를 많이 다루셨다. 한국의 프리메이슨은 나를 회원으로 만들기 위한 여러 가지 시도들을 하였고, 그 과정에서 나를 여러 번 죽일 뻔하였다. 모든 프리메이슨 회원들은 회원이 되는 과정으로 정신을 붕괴시키고 프리메이슨 사상과 정체성을 주입한다. 나는 그것이 얼마나 위험하고 하나님을 대적하는 것인지 알고 있다. 찰스 피니를 포함한 엘리트 그룹들이 얼마나 많은 프리메이슨의 거짓말을 진실로 받아들 일 수밖에 없었는지 나는 경험하였다. 프리메이슨은 약 300년 넘도록 모든 회원들을 마인드컨트롤이라 불리는 방법으로 정신을 붕괴시키고 회복시키면서, 그들의 사상을 주입한다. 이 과정에서 수많은 진짜 정보와 약간의 가짜 정보와 정체성을 알려주는데, 진짜 정보의 엄청난 위력 때문에 가짜 정보도 진실로 받아들이게 된다. 이렇게 하게 되면 마인드컨트롤 건 사람이 피해자의 주인이 된다는 표현을 프리메이슨이 사용한다. 즉, 피해자는 마인드컨트롤 건 사람을 자연스럽게 따르는 관계가 성립되면서 롯찌의 계급이 형성되는 것이다. 2차 세계대전 이후 기술의 발전으로 첨단 기술을 사용함으로 마인드컨트롤 기술이 진보함으로 더욱 강력하게 사람의 정신을 자신들이 필요로 하는 방향으로 유도할 수 있게 되었다. 그래서 모든 프리메이슨은 마인드컨트롤 당해 정상이 아니다. 그들은 마인드컨트롤을 사용 하면서도 자신이 마인드컨트롤 당해 속고 있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다.
예수 그리스도는 프리메이슨이 마인드컨트롤에서 벗어나서 자신의 세계관과 선택을 따르기를 원하신다. 그리고 그들이 주님께로 인도되기를 원하신다.
나는 프리메이슨 회원이 당하는 마인드컨트롤 과정을 겪었고, 정신이 붕괴되었지만, 주님의 은혜로 수많은 진짜 정보 가운데 거짓을 분별할 수 있었다. 나는 프리메이슨이 되지 않고 끝까지 그들로부터 항거하였다. 나와 아내와 어린 딸은 그들로부터 극심한 정신적 육체적 스트레스를 경험하였다.
하나님은 신앙의 본질로 나를 인도하시기 위하여, 나를 다루실 때 가장 혹독하게 다루셨다. 정말 몇 번이고 주님께 나의 생명을 가져가 달라고 주님께 애원하기도 하였다. 너무나 감당할 수 없다고 생각했기에 그렇게 기도하였다. 그러나 지나온 길을 보니 내가 모두 감당할 수 있는 것들이었다. 그러한 과정이 있었기에 내가 성숙할 수 있었다.
나는 그동안 주님이 나를 다루어 오신 것들을 정리하는 시간을 가졌다. 그것은 “하나님의 기준 세우기”라는 주제로 정리한 것이다. 일차적 목적은 내가 프리메이슨으로 받은 피해에서부터 영적으로 회복하기 위해 쓰기 시작한 것이었다. 처음에는 나를 주님께로 인도하였던 내용을 요약하고 내가 그 말씀에 어떻게 순종하며 따라갔는지 정직하게 서술하였다. 내가 발견한 것이 아닌 나를 변화시킨 것들을 요약하고 정리한 것이었다. 인터넷에 올린 나의 글을 수백 명이 읽었으며 다른 블로그에 나의 글들이 인용되었다. 그리고 나에게 피드백이 보내져 왔다. 몇몇 사람들은 나의 글에 깊이 매료되어 나의 글이 인터넷에 올라오기만을 기다렸다는 사람도 있었다. 참으로 감사한 일이었다. 비록 소수의 사람이 나에게 자신들에게 일어나고 있는 신앙의 변화에 대하여 말해주었지만, 나의 글을 읽고 오직 주님만이 자신의 삶의 유일한 모든 것 삼은 사람들이 생겼다는 것은 참으로 감사한 일이었다.
그렇게 하나님 기준 세우기 20가지의 주제가 끝나고 연구논문을 쓰게 되었다. 이 연구논문은 ‘신앙의 본질로써의 하나님 나라’에 대한 새로운 패러다임을 가져올 만큼 반항이 큰 논문이었다. 그렇지만 하나도 새로운 것이 없는 논문이다. 왜냐하면, 지금까지 영적이며 신앙적인 부분이 신학적인 주제로 설명되지 않은 것을 신학적 논문 위에 올려놓았기 때문이다. 나는 2000년 역사 동안 아주 새로운 신학을 시도한 새로운 하나님 나라를 소개하는 것이 아니다. 2000년 역사 동안 줄기차게 내려온 신앙의 본질을 ‘하나님 나라’라는 주제 위에 올려놓은 것뿐이다.
2000년 전에 예수님이 말씀하신 신앙의 본질을 ‘하나님 나라’ 개념에 담아서 가르치신 내용이, 우리 시대에 적합하게 설명될 필요가 있다. 예수님은 히브리어로 유대인들에게 제일 먼저 하나님 나라를 가르치셨다. 그리고 그 가르침은 헬라 문화에 있는 사람들에게 헬라어로 적합하게 번역되고 상황화 되어 오늘날 우리가 가지고 있는 성경에 담겨있게 되었다.
많은 사람은 ‘하나님 나라’가 서구사람들의 사고방식에 적합한 신앙의 본질탐구 방법이라는 것을 모르고 있다. 심지어 ‘하나님 나라’를 2000년 동안 발견하지 못한 새로운 신학으로 생각하는 사람도 있다. ‘하나님 나라’는 서양적 사고방식에서 나온 상황화된 신학 방법이다. 한국은 교육제도의 근대화를 이루면서 이제 동양적 사고와 서양적 사고가 동시에 공존하는 독특한 문화 가운데 있다. 신앙의 본질을 지금 유행하고 있는 ‘하나님 나라’라는 방법론을 이용하여 우리 시대에 적합한 방식으로 시도되어야 하며, 나는 그러한 시도를 시작하고자 한다.
우리 시대에 적합한 하나님 나라는 내가 하나님 나라의 삶을 추구하며 경험한 것을 토대로 실제적인 삶을 말하고 싶다. 내가 경험하고 실제화 되지 않은 것은 내 것이 아니고, 아직 내가 아직 모르고 있는 것이다. 나는 이론을 쓰고 싶지 않다. 실제를 쓰고 싶다. 성경은 이론을 이야기 하는 것이 아니라, 실제를 이야기하고 있기 때문이다.
1) 크리스천 뉴스위크 초대칼럼, 아멘넷 아멘뉴스의 기사, ttp://www.usaamen.net/news/
board.php?board=LA3&command=body&no=121 (접속시간 2013년 2월 21일)
2) http://www.isaiah54.org/finney.htm (접속시간 2013년 2월 21일)
김바울 선교사.
논문을 먼저 쓰고, 논문언어를 쉬운 언어로 바꾸어야 되는데 바꾸지 못하였습니다.
추후 선교지에서 쉬운 언어로 바꾸어서 책으로 편찬할 생각입니다.
(현제 논문의 마지막 성령 부분을 쓰고 있으며, 이미 하나님 나라의 실제인 산상수훈을 시작한 상태입니다.)
이 글은 논문언어로 되어 있어서 읽기가 쉽지 않을 것 같아서, 읽는 사람이 자신의 삶에 실제가 될 만한 내용을 첨부하여 저의 간증과 경험들을 적었습니다.
이 논문을 쓰면서, 이와 관련하여 몇편의 연구논문을 더 써야 할 것 같습니다.